전체 기사
단풍 든 활엽수 숲과 큰 바위 사이, 굽은 길 위에 선 2층 누각 강선루
CULTURE 전남 순천

뒷간까지 국가유산이 된 절, 순천 선암사

세계유산 산사이자 태고종 하나뿐인 총림, 순천 선암사의 내력을 짚는다. 승선교와 원통전, 국가유산이 된 뒷간, 절 차밭과 이어진 야생차체험관까지 다룬다.

노을에디터 노을
지역
전남 순천
주제
CULTURE
발행
읽는 시간
8⁠분

2026⁠년 9⁠월, 선암사 뒷간이 국가민속문화유산이 됐다. 두 달 앞선 7⁠월에는 순조의 탄생을 빌던 원통전이 보물에 올랐다. 순천 조계산 동쪽 기슭의 이 절은 다리 하나, 현판 하나에도 따로 기록이 남아 있다.

이름난 건물을 차례로 훑기보다, 건물마다 붙은 기록을 먼저 짚는다. 끝은 절 옆 순천전통야생차체험관이다.

불을 막으려 이름까지 바꾼 절, 선암사

창건 설화는 두 가지로 전해진다. 6⁠세기 아도화상이 지금의 비로암 자리에 처음 터를 잡았다는 이야기와, 9⁠세기 도선국사가 절을 세웠다는 이야기다. 국가유산청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도선 쪽을 더 믿을 만하다고 본다.

도선에 얽힌 전설도 있다. 고려 문신 박전지가 남긴 글에는 ‘⁠암(巖)⁠’ 자가 든 절 3⁠곳을 세우면 삼한이 하나가 되고 전쟁이 그친다는 지리산 성모천왕의 말이 나온다. 박전지는 그 말을 따라 도선이 지은 절로 선암⁠·운암⁠·용암을 꼽았다.

‘⁠선암(仙巖)⁠’⁠이라는 이름은 옛 신선이 그 위에서 바둑을 두었다는 절 서쪽의 넓적한 큰 바위에서 나왔단다.

11⁠세기에는 고려 대각국사 의천이 절을 크게 고쳐 지었고, 선암사는 천태종을 펴는 중심 사찰이 됐다. 1597⁠년 정유재란 때는 절이 거의 다 타 버려 철불과 탑, 부도, 조계문(지금의 일주문) 정도만 남았다.

18⁠세기 중반 또 큰불이 나자 상월 스님이 이듬해부터 절을 다시 지었다. 선암사는 이때 불을 막으려고 산 이름을 청량산, 절 이름을 해천사로 바꿨다고 밝힌다. 아도화상이 처음 붙였다고 전하는 옛 이름이다. 淸⁠·涼⁠·海에는 모두 물 수(氵)⁠가 붙고, 川은 내 천이다.

19⁠세기 초에도 불이 났다. 대웅전은 1824⁠년에 새로 지었고, 이 무렵 이름도 조계산 선암사로 돌아왔다. 옛 이름은 일주문에 남아 있다. 앞쪽 현판은 ‘⁠조계산선암사⁠’, 뒤쪽 현판은 ‘⁠고청량산해천사(古淸涼山海川寺)⁠’, 곧 옛 청량산 해천사다.

한국전쟁 전까지 65⁠동이던 건물은 전쟁 중 불에 타 지금은 크고 작은 20⁠여 동이다. 대웅전과 원통전, 팔상전, 불조전, 장경각, 강선루가 그 가운데 있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곁, 붉은 기둥을 세운 범종각과 은행잎 깔린 흙길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곁, 붉은 기둥을 세운 범종각과 은행잎 깔린 흙길

태고종에 하나뿐인 총림, 태고총림

선암사의 공식 이름 앞에는 ‘⁠한국불교태고종 태고총림⁠’⁠이 붙는다. 총림은 참선하는 선원, 경전을 배우는 강원, 계율을 익히는 율원을 모두 갖춘 절을 이른다. 선원에는 ‘⁠호남제일선원⁠’ 현판이 걸렸다. 조선 후기 남쪽 암자 대승암에서는 4⁠대 강백(경전을 강의하는 큰스님)⁠으로 불리는 함명⁠·경붕⁠·경운⁠·금봉이 잇달아 나왔다.

돌담 위로 연등 줄을 건 경내 흙골목과 단청을 칠하지 않은 나무 건물
돌담 위로 연등 줄을 건 경내 흙골목과 단청을 칠하지 않은 나무 건물

한국불교태고종은 1970⁠년에 선 종단이다. 해방 뒤 비구와 대처승(결혼한 승려) 사이 분규 끝에 1962⁠년 통합 종단이 출범했고, 1970⁠년 대처 쪽이 갈라져 나왔다. 태고종은 승려의 혼인을 공식 인정한다. 종단 이름은 고려 말 고승 태고 보우에서 따왔다.

2018⁠년 6⁠월 30⁠일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 세계유산에 올랐다. 통도사⁠·부석사⁠·봉정사⁠·법주사⁠·마곡사⁠·선암사⁠·대흥사, 7⁠곳을 묶은 이름이다. 그해 5⁠월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이코모스)⁠는 이 가운데 통도사⁠·부석사⁠·법주사⁠·대흥사 4⁠곳만 올리라고 권고했다. 선암사가 빠진 권고안이었지만, 세계유산위원회 논의에서 7⁠곳을 모두 올리자는 제안이 나와 함께 등재됐다.

국가유산청은 7⁠곳 산사의 가치로 참선 수행과 교리 공부가 함께 이어지는 전통을 든다. 억압과 전란을 겪고도 지금까지 신앙과 일상 수행의 중심으로 남았다는 점도 꼽는다.

용머리 돌이 박힌 무지개다리, 승선교에서 일주문까지

주차장에서 일주문까지는 계곡을 끼고 1km 안팎의 숲길을 걷는다. 송광사와 선암사를 아우르는 조계산 일대는 2009⁠년 명승이 됐다. 국가유산청은 선암사 쪽을 수십 년 넘은 도토리나무, 동백나무, 단풍나무, 밤나무, 느티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적는다.

잎이 물들기 시작한 활엽수 아래 흙길을 걷는 사람들
잎이 물들기 시작한 활엽수 아래 흙길을 걷는 사람들

숲길에서 계곡을 건너는 돌다리가 승선교다. 계곡 바닥의 암반을 기초로 삼아 길게 다듬은 돌을 무지개 모양으로 쌓았고, 1963⁠년 보물이 됐다. 다리 아래 한가운데에는 용머리를 새긴 돌이 밑으로 삐죽 나와 있다. 이 돌을 뽑으면 다리가 무너진다는 말이 예부터 전한다.

다리를 놓은 이로는 숙종 때 호암대사가 꼽힌다. 관음보살을 보려고 백일기도를 했으나 이루지 못한 대사가 벼랑에서 몸을 던지려 하자, 한 여인이 나타나 그를 구하고 사라졌다. 그 여인을 관음보살로 여긴 대사가 원통전을 세우고 절 입구에 무지개다리를 놓았다는 전설이다.

계곡 바닥에서 올려다본 승선교, 다리 위로 사람들이 건넌다
계곡 바닥에서 올려다본 승선교, 다리 위로 사람들이 건넌다

절 입구에는 승선교와 함께 누각 강선루가 선다. 승선(昇仙)⁠이 신선이 오른다는 뜻이라면, 강선(降仙)⁠은 신선이 내려온다는 뜻이다. 강선루 안팎에 현판이 하나씩 걸렸는데, 안쪽은 윤용구, 바깥쪽은 김돈희의 글씨다.

경내로 드는 길가의 삼인당은 긴 달걀꼴 연못 한가운데 섬을 둔 모양이다. 선암사 기록에는 862⁠년 도선국사가 만들었다고 나온다. 삼인(三印)⁠은 제행무상⁠·제법무아⁠·열반적정, 불교의 세 가지 근본 가르침을 뜻한다. 국가유산청은 이런 이름과 모양의 연못을 우리나라에서 선암사에서만 볼 수 있다고 적는다.

일주문은 1540⁠년 다시 지었다는 기록이 있는 문이다. 국가유산청은 이 문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불길을 피한 선암사 유일의 건축물로 본다. 기둥과 창방만으로 T⁠자 모양 뼈대를 짠 양팔보 형식의 일주문은 남북한을 통틀어 이 문과 북한 안변 보현사 것 2⁠곳에만 있다. 2022⁠년 보물로 지정됐다.

보물 법당 2⁠채와 천연기념물 매화, 대웅전⁠·원통전⁠·선암매

선암사의 중심 법당은 대웅전이다. 지금 건물은 1824⁠년에 다시 지었고, 2001⁠년 보물이 됐다. 앞마당에 나란히 선 동⁠·서 삼층석탑 2⁠기를 국가유산청은 9⁠세기 무렵 한 솜씨로 함께 세운 탑으로 본다. 선암사는 도선이 세운 철불 1⁠구와 탑 2⁠기, 부도 3⁠기가 지금도 전한다고 밝힌다.

현판 ‘大雄殿’을 건 처마 아래 돌계단과 앞마당 석탑, 연등 줄
현판 ‘⁠大雄殿⁠’⁠을 건 처마 아래 돌계단과 앞마당 석탑, 연등 줄

관음보살을 모신 원통전은 2026⁠년 7⁠월 7⁠일 보물이 됐다. 정면 3⁠칸, 측면 3⁠칸 건물 앞에 1⁠칸을 내달아 위에서 보면 ‘⁠丁⁠’ 자 모양이고, 뒤를 뺀 삼면을 틔운 보기 드문 평면이다. 불상은 감실(불상을 모셔 두는 작은 공간) 안에 모셨다. 국가유산청은 꽃살문과 푸른색 위주의 단청, 민화풍 그림을 이 건물의 예술적 가치로 든다.

정조는 세자를 얻으려 선암사에 기도를 명했다. 선암사 기록으로는 눌암 스님이 이 원통전에서 100⁠일 기도를 올렸고, 1790⁠년 순조가 태어났다. 그가 6⁠세 때 쓴 ‘⁠대복전(大福田)⁠’, 큰 복의 밭이라는 글씨는 절에 내려왔고, 순조 원년인 1801⁠년 원통전에 걸렸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임금이 뒤에 하늘 천(天)⁠과 사람 인(人)⁠을 한 자씩 더 써 보내 ‘⁠인천대복전⁠’⁠이 되게 했다고 적는다. 인⁠·천 편액은 지금 대복전과 다른 곳에 따로 보관한다.

무우전과 팔상전 둘레에는 매실나무 20⁠여 그루가 있다. 그 가운데 고목 백매와 홍매 2⁠그루가 2007⁠년 ‘⁠선암매⁠’⁠라는 이름으로 천연기념물이 됐다. 높이는 백매가 7m, 홍매가 5m⁠다.

열린 문 안으로 불상 3구가 보이는 팔상전(八相殿)
열린 문 안으로 불상 3⁠구가 보이는 팔상전(八相殿)

고려 때 의천이 절을 고쳐 지으며 와룡송과 매화를 심었다는 상량문 기록도 전한다. 다만 백과사전은 나무 나이를 600⁠년으로 잡아도 의천 시대와 맞지 않는다며, 지금 나무는 그 뒤에 심은 것으로 본다.

매화는 이른 봄 꽃이다. 봄에는 동백과 벚꽃, 진달래와 철쭉, 겹벚꽃이 차례로 핀다. 선암사도 누리집에서 사철 이어지는 꽃과 가을 단풍, 계곡, 송광사로 넘어가는 조계산 등산로를 이 절의 자랑으로 꼽는다.

연등 줄 곁에 꽃을 가득 피운 겹벚꽃 고목, 그 아래 쉬는 사람들
연등 줄 곁에 꽃을 가득 피운 겹벚꽃 고목, 그 아래 쉬는 사람들

지금 남은 사찰 전통 해우소 가운데 가장 큰 곳, 선암사 측간

2026⁠년 9⁠월 30⁠일 국가유산청은 사찰 뒷간 3⁠곳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영월 보덕사와 합천 해인사 국일암의 해우소, 그리고 선암사 측간이다. 국가유산청은 선암사 측간을 지금 남은 사찰 전통 해우소 가운데 가장 큰 건물로 본다.

정면 6⁠칸, 측면 4⁠칸 건물 가운데로 출입 복도가 나 있어 위에서 보면 ‘⁠丁⁠’ 자 모양이다. 비탈에 지어 앞쪽은 1⁠층, 뒤쪽은 2⁠층 누각 꼴이다. 칸마다 문 없이 가슴 높이 칸막이만 두고 눈높이에 살창을 달아 빛과 바람이 든다.

분뇨는 왕겨⁠·낙엽과 함께 삭혀 밭 거름으로 썼다. 지금도 실제로 쓰는 뒷간이다.

내력은 길다. 순천시는 1540⁠년 일주문 중수 기록에 ‘⁠청측(圊廁)⁠’⁠이라는 이름이 처음 나온다고 밝힌다. 국가유산청은 지금 건물을 1920⁠년대 이전 것으로 본다. 1704⁠년 『조계산선암사사적』⁠의 청측 기록과 1928⁠년 수리 때 쓴 상량 묵서, 일제강점기 사진이 근거다.

청측 말고도 정랑, 대변소, 뒷간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흔히 쓰는 ‘⁠해우소⁠’⁠는 한국전쟁 뒤 통도사 극락암 경봉 스님이 처음 쓴 말로, 근심을 푸는 곳이라는 뜻이다. 지금의 ‘⁠뒷간⁠’ 편액은 앞서 나온 4⁠대 강백 가운데 한 사람인 경운원기 스님이 쓴 원래 편액에서 한글 부분만 따서 새로 만들었다. 원본은 선암사성보박물관에 있다.

옛 표기 ‘뒤ㅅ간’ 편액을 단 측간 입구와 그 옆 안내판
옛 표기 ‘⁠뒤ㅅ간⁠’ 편액을 단 측간 입구와 그 옆 안내판

순천 출신 동화작가 정채봉은 이곳을 “⁠대한민국 제일의 뒷간⁠”⁠이라 했고, 건축가 김수근은 “⁠한국에서 가장 크고 멋진 화장실⁠”⁠이라 불렀다. 정호승의 시 「선암사」⁠는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로 시작해 곧장 해우소로 이어진다. 시인은 시집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의 제목도 이 첫 구절에서 따왔다.

고려 때부터 차밭이 있던 절 옆, 순천전통야생차체험관

도선국사가 일주문 둘레에 처음 차나무를 심었고, 의천이 지금 칠전선원 차밭 자리에 차를 심었다고 선암사는 전한다. 조선 시대 상량문에는 차를 돌보는 ‘⁠다각⁠’⁠이라는 소임이 나온다. 해방 뒤 분규 속에 거의 버려졌던 차밭은 1970⁠년대 스님들이 다시 손질했다.

순천 차는 400⁠여 년 전 기록에도 나온다. 허균은 1611⁠년 『도문대작』⁠에 작설차는 순천 것이 으뜸이고 변산 것이 그다음이라고 적었다. 순천시 소개로는 선암사 차밭이 약 2⁠만 평이고, 고려 때부터 차밭이 있었다는 기록도 전한다.

순천시 설명을 따르면 이 일대 차나무는 거름 없이 더디 자라고, 곧은 뿌리가 2~4m 깊이까지 내려가 옮겨 심으면 죽는다. 시집가는 딸이 그 집에 깊이 뿌리내려 살기를 바라며 가마에 차씨를 넣어 보냈다는 옛이야기도 여기서 나왔단다.

순천전통야생차체험관은 절이 아니라 순천시가 지은 시설이다. 2007⁠년 10⁠월 절 가는 길목에 지었고, 운영은 지금도 시청 관광과 몫이다. 순천시는 이곳에서 하는 일 가운데 야생차 보존과 홍보를 맨 앞에 둔다. 건물은 선암사 경내 옆 삼나무 숲에 자리한다.

곧게 자란 침엽수 사이로 체험관까지 이어지는 흙길
곧게 자란 침엽수 사이로 체험관까지 이어지는 흙길

다례 시간에는 차 마시는 법과 차에 담긴 생활 예절을 30~40⁠분 동안 배운다. 다식은 쌀⁠·밤⁠·콩 가루를 꿀이나 조청에 반죽해 다식판에 찍어 낸 전통 음식이다. 전시관에는 차의 역사와 다기, 차 만드는 과정을 정리해 두었고, 시음판매실에서는 순천에서 난 차와 다기를 판다.

현판 ‘순천전통야생차체험관’을 단 대문과 노란 국화를 심은 무쇠솥 화분
현판 ‘⁠순천전통야생차체험관⁠’⁠을 단 대문과 노란 국화를 심은 무쇠솥 화분
옆손잡이 다관과 숙우, 차호, 연둣빛 찻물이 담긴 잔
옆손잡이 다관과 숙우, 차호, 연둣빛 찻물이 담긴 잔

덖음솥 6⁠개를 갖춘 제다실도 있지만, 누리집에는 차 만들기 프로그램을 지금 운영하지 않는다고 나온다. 찻잎을 직접 덖어 보려면 미리 전화로 묻는 편이 낫다.

선암매를 보려면 이른 봄에 가고, 다례까지 하려면 아래 카드의 휴무일을 보고 예약이 필요한지 전화로 묻는다.

이 기사에 나온 곳

선암사PLACE
주소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길 450
요금
입장 무료
주차
선암사 주차장 무료
문의
061-754-5247
가는 길
순천 시내버스 1⁠번, 선암사 하차
순천전통야생차체험관PLACE
주소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길 450-1
휴무
매주 월요일(공휴일 제외), 설⁠·추석 연휴 다음 날
요금
다례 1⁠인 3000⁠원, 다식 1⁠인 5000⁠원(2⁠인 이상). 한옥 숙박 1⁠박 가족실 5⁠만 원, 중작관(단체실) 15⁠만 원, 우전관 30⁠만 원
예약
한옥 숙박은 순천시 누리집 바로예약
주차
선암사 주차장. 숙박객 차량만 18:00~21:00 체험관까지 진입
문의
061-749-4500

2026⁠년 10⁠월 기준 정보입니다. 운영시간과 요금은 바뀔 수 있으니 가기 전에 한 번 더 확인해 주세요.

노을
에디터 노을

전국을 다니며 여행 기사를 씁니다. 가 본 곳 가운데 다시 가고 싶은 곳만 TBAG⁠에 적습니다.

Map / 지도에서 보기

순천, 여기예요

진하게 칠한 점이 이 기사에 나온 곳입니다. 다른 점을 누르면 그 지역 기사가 나옵니다.

부산대구대전강원경기인천제주충북경북전북세종서울충남경남전남·광주울산독도독도
지도 데이터: svg-maps (CC BY 4.0)
전남 순천기사 1⁠편
  1. 뒷간까지 국가유산이 된 절, 순천 선암사CULTURE · 지금 읽는 기사
순천 기사 모아 보기 →

다음엔
여기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