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신문부터 취향교까지 걸어 이은 서울 고궁 4곳
창덕궁 후원 예약 없이도 종묘 담장길에서 출발해 북신문을 건너고 창경궁 춘당지와 대온실, 창덕궁 선정전·낙선재, 경복궁 향원정과 경회루까지 한나절 도보 코스로 묶었다.
해마다 10월 하순이면 서울 도심 궁궐에는 은행나무에 이어 단풍나무가 차례로 물든다. 이맘때 가장 먼저 매진되는 표는 단연 창덕궁 후원 관람권이다. 그렇다고 후원 예약을 놓쳤다는 이유로 가을 고궁 산책을 접을 까닭은 없다. 왕실 사당인 종묘에서 출발해 창경궁과 창덕궁 전각 구역, 경복궁까지 이웃한 4곳만 걸어 이어도 반나절 단풍 코스로 충분하다.
출발지는 4곳 가운데 관람객이 가장 적은 종묘다. 율곡로 지하화로 복원된 담장 보행로와 함양문, 북촌 골목을 차례로 밟으면 전철이나 버스를 타지 않고도 경복궁 경회루까지 한 호흡에 이어진다. 휴무일이 겹치지 않고 종묘 자유 관람이 열리는 수요일이나 주말 오후에 걷기 알맞다.
정전 참배객 비켜난 동쪽 담장 은행나무 숲길, 종묘
종로3가역에서 5분 남짓 걸으면 종묘 정문인 외대문이 나온다.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며 경복궁보다 먼저 짓기 시작한 왕실 사당이다. 유교 국가였던 조선이 나라의 뿌리를 어디에 두었는지 보여 주는 공간이다. 건축 원형과 제례 전통을 인정받아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올랐다.

문을 넘으면 거칠게 다듬은 박석 길인 ‘삼도’가 숲 한가운데를 가른다. 가운데 가장 높은 신로는 혼령이, 오른쪽 어로는 임금이, 왼쪽 세자로는 왕세자가 걷던 길이다. 삼도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조선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정전과 영녕전이 차례로 나온다.
중심 건물인 정전(국보)은 정면 19칸, 가로 길이 101m에 이르는 긴 목조 건축물이다. 5년에 걸친 해체·보수 공사를 마치고 2025년 4월 다시 문을 열었다. 공사 기간 창덕궁 구선원전에 임시로 옮겼던 태조 이하 왕과 왕비 신주 49위도 이때 본래 자리로 돌아왔다.

단풍을 보며 조용히 걷기 좋은 구간은 따로 있다. 관람객 대다수가 삼도를 따라 정전과 영녕전으로 곧장 향할 때, 외대문 오른쪽 길로 방향을 틀면 한결 한산하다. 제례 물품을 준비하던 향대청과 임금이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던 재궁, 공신당이 나란히 이어진다. 이 전각들 담장을 따라 수백 년 된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단풍나무가 긴 숲터널을 이룬다.
영녕전 뒤편 언덕으로 오르면 창경궁으로 넘어가는 ‘북신문’이 나온다. 1932년 일제가 종묘와 창경궁 사이에 율곡로를 내면서 끊어 놓았던 길이다. 2022년 도로를 지하 터널로 묻고 그 위에 녹지 보행로를 복원한 뒤, 2024년부터 북신문을 열어 두 공간을 다시 이었다. 다만 이 연결문은 주말과 공휴일, 문화가 있는 날에만 열리니 평일에 찾았다면 외대문으로 나와 율곡로 보행로를 따라 이동해야 한다.
내농포 자리에 판 연못과 1909년 철골 유리 온실, 창경궁
북신문 건너편 율곡로 출입문이나 정문 홍화문으로 들어서면 창경궁이다. 태종이 상왕으로 물러나 머물던 수강궁 터에, 성종 14년(1483) 세 대비를 모시려고 전각을 넓혀 지었다. 남향을 기본으로 삼는 다른 궁궐과 달리 지세를 따라 정전인 명정전(국보)을 동향으로 앉힌 점이 특징이다. 광해군 8년(1616)에 다시 지은 명정전은 서울 5대 궁궐의 정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가을 창경궁의 핵심은 전각 구역 북쪽에 있는 연못 ‘춘당지’다. 큰춘당지와 작은춘당지 2개로 나뉜 이 물가는 본래 임금이 직접 벼를 심고 가꾸며 백성의 농사일을 살피던 논 ‘내농포’였다. 1909년 일제가 창경궁 전각을 헐어 내고 동물원·식물원을 들이면서 내농포를 파내 연못으로 바꿨다.
1980년대 복원 사업을 거치며 전통 조경에 맞춰 다시 다듬었고, 지금은 궁능유적본부가 꼽는 가을 단풍 명소가 됐다. 물가 벤치에 앉아 쉬어도 좋지만, 연못 전체 구도를 보려면 북쪽 바깥에 솟은 나지막한 언덕 산책로로 올라가는 편이 낫다. 오후 3시에서 4시 사이 서쪽에서 비스듬히 햇살이 들 때 수면에 비치는 단풍 색감이 가장 선명하다.

춘당지를 지나 안쪽으로 조금 더 걸으면 흰 철골과 유리로 지은 ‘대온실(국가등록문화유산)’이 나온다. 춘당지가 만들어진 1909년, 일본 황실 식물원 책임자 후쿠바 하야토가 설계해 프랑스 회사에 시공을 맡긴 한국 최초의 서양식 온실이다.
실내에는 천연기념물인 창덕궁 향나무의 후계목과 통영 비진도 팔손이나무, 자생 분재와 양치식물 등 100여 종을 기른다. 붉고 노란 활엽수림 한가운데 뾰족한 유리 지붕과 흰 창틀이 서 있어 전통 기와 전각과는 전혀 다른 대비를 보여 준다.

대온실에서 내전 쪽으로 돌아 나오는 길에는 통명전과 양화당 뒤편 비탈길에 올라 볼 만하다. 겹겹이 이어진 기와지붕과 단풍 숲 너머로 도심 빌딩과 남산 N서울타워가 한 시야에 들어온다. 창경궁은 덕수궁과 함께 밤 9시까지 상시 야간 개방을 운영한다. 다만 11월에는 안전을 위해 17시 30분부터 내전 뒤편과 외곽 숲길 출입을 통제한다. 그 시각 이후에는 명정전·춘당지·대온실 주변만 열어 두니 해가 지기 전에 위쪽 조망 구간을 먼저 돌아볼 것.
단청 뺀 낙선재부터 청기와 올린 편전까지, 창덕궁
창경궁 통명전 서쪽 언덕에 난 ‘함양문’을 통과하면 곧장 창덕궁이다. 두 궁궐이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맞닿은 이른바 ‘동궐’ 구조를 실감하는 지점이다. 태종 5년(1405) 경복궁의 이궁으로 지은 궁궐이다.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불탄 뒤 고종이 중건하기 전까지 약 270년 동안 왕들이 가장 오래 머문 실질적 법궁이었다.

함양문 옆 매표소에서 표를 확인하고 언덕을 조금 내려가면 동남쪽 끝자락에 ‘낙선재’ 일대가 나온다. 헌종 13년(1847) 임금의 서재 겸 사랑채로 지은 낙선재와 석복헌, 수강재가 나란히 이어진다. 궁궐 건물인데도 기둥과 처마에 화려한 단청을 입히지 않아 조선 사대부가의 살림집처럼 수수하다.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와 덕혜옹주 등 대한제국 황실 가족이 생애 마지막 시기를 보낸 거처이기도 하다.

낙선재에서 서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침전인 희정당과 편전인 ‘선정전(보물)’이 차례로 나온다. 임금이 신하들과 날마다 국정을 의논하던 선정전은 오늘날 서울 5대 궁궐에 남아 있는 전각 가운데 유일하게 푸른 청기와를 올린 건물이다. 제작비가 비싸고 공정이 까다로웠던 청기와가 지붕 위에 그대로 남아 가을 숲과 뚜렷한 색 대비를 이룬다. 바로 옆 희정당은 1917년 화재 뒤 경복궁 강녕전을 옮겨 다시 지으면서 자동차가 닿는 서양식 현관과 유리창을 달았다.
응봉 자락 높낮이를 깎지 않고 골짜기 모양대로 전각을 앉혀, 문을 하나 지날 때마다 마당의 축과 높이가 달라진다.
선정전을 지나 서쪽 외전 구역으로 나가면 정전인 ‘인정전(국보)’이다. 왕의 즉위식과 외국 사신 접견 같은 나라의 큰 행사가 열리던 중심 건물이다. 경복궁은 평지에 일직선 축으로 전각을 세웠다. 반면 창덕궁은 북악산 왼쪽 봉우리인 응봉 지형에 맞춰 진선문에서 인정전으로 들어가는 어도를 두 번 꺾어 놓았다. 자연 지세를 거스르지 않은 이 배치가 1997년 조선 궁궐 가운데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핵심 근거다.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은 2024년 11월부터 해체 보수 공사에 들어가 가설 덧집에 가려져 있다. 공사가 끝날 때까지는 돈화문 서쪽 ‘금호문’을 임시 정문으로 삼아 드나든다. 후원 표를 구하지 못했더라도 아쉬워할 일은 아니다. 낙선재 뒤편 화계와 인정전 동쪽 담장, 금천교 주변에 굵은 은행나무와 단풍나무가 많아 전각 관람권만으로도 가을 풍경이 넉넉하다.
북쪽으로 돌아온 취향교와 연못 위 중층 누각, 경복궁
창덕궁 금호문을 나와 북촌 초입인 율곡로와 삼청로 어귀를 따라 서쪽으로 20분쯤 걸으면 경복궁 동쪽 국립민속박물관 출입구가 나온다. 광화문 정문으로 들어가면 근정전부터 북쪽 끝까지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반면 민속박물관 쪽 문으로 입장하면 단풍이 몰려 있는 북쪽 후원 권역으로 바로 들어선다.

동쪽 문을 지나 조금만 걸으면 네모난 연못 한가운데 둥근 섬을 만들고 세운 2층 육각 정자 ‘향원정(보물)’이다. 경복궁은 태조 4년(1395) 창건된 뒤 임진왜란으로 불타 270여 년간 비어 있었다. 고종이 궁궐을 중건하던 1873년, 건청궁 앞 옛 후원(서현정) 자리에 연못을 파고 새로 세운 건물이 이 정자다.
향원정은 지반 보강과 기울기 교정을 거쳐 2021년 11월 복원을 마쳤다. 이때 한국전쟁 당시 부서진 뒤 남쪽에 임시로 놓였던 나무다리 ‘취향교’도 본래 자리인 정자 북쪽으로 되돌려 놓았다. 북악산 능선을 등지고 선 육각 지붕과 흰 무지개다리가 단풍나무 가지 사이로 수면에 나란히 비친다.
향원정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길에는 고종이 양어머니 신정왕후 조 대비를 위해 지은 ‘자경전’ 뒤편을 챙겨 볼 만하다. 십장생 굴뚝과 꽃담으로 둘러싸인 담장 너머로 굵은 은행나무 3그루가 마당을 노랗게 덮는다.

네 궁궐 도보 코스의 마지막 종착지는 근정전 서쪽 연못에 세운 ‘경회루(국보)’다. 정면 7칸, 측면 5칸 규모로 현존하는 국내 단일 평면 목조 누각 가운데 가장 크다. 나라에 경사가 있거나 외국 사신을 맞을 때 연회를 열던 건물이다.
경회루 서쪽 마당에는 수백 년 자란 은행나무 거목이 서 있다. 오후 4시 무렵 서쪽 인왕산 쪽으로 해가 기울면 노란 은행잎과 48개 화강석 기둥이 연못 물결에 길게 드리운다. 동절기인 11월부터 2월까지는 경복궁 폐장 시각이 17시로 앞당겨지고 입장은 16시에 마감된다. 늦어도 15시 전에는 민속박물관 쪽 문을 통과해야 여유 있게 경회루까지 둘러본다.
이 기사에 나온 곳
- 주소
- 서울 종로구 종로 157
- 운영
- 2~5월·9~10월 09:00~18:00, 6~8월 09:00~18:30, 11~1월 09:00~17:30(입장 마감 폐장 1시간 전)
- 요금
- 내국인(25~64세)·외국인(19~64세) 1000원, 매주 수요일 무료, 코리아 그랜드 페스티벌 기간(2026년 10월 29일~11월 15일) 무료
- 휴무
- 매주 화요일
- 예약
- 월·목·금요일은 시간제 해설 관람만 운영, 수·토·일요일 및 공휴일은 자유 관람(2026년 10월 29일~11월 15일은 전일 자유 관람)
- 가는 길
- 지하철 1·3·5호선 종로3가역 11번 출구에서 도보 약 5분, 북신문(창경궁 연결문)은 주말·공휴일·문화가 있는 날 개방
- 문의
- 종묘관리소 02-765-0195
- 주소
-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 185
- 운영
- 상시 09:00~21:00(입장 마감 20:00, 야간에는 춘당지·대온실 권역 외 외곽 숲길 17:30~18:00 이후 통제, 2026년 11월 10~15일은 특별행사로 17:30 전체 마감)
- 요금
- 1000원, 매주 수요일 무료, 코리아 그랜드 페스티벌 기간(2026년 10월 29일~11월 15일) 무료
- 휴무
- 매주 월요일
- 가는 길
- 지하철 4호선 혜화역 4번 출구에서 도보 약 15분, 종묘 북신문 또는 창덕궁 함양문과 연결
- 문의
- 창경궁관리소 02-762-4868
- 주소
- 서울 종로구 율곡로 99
- 운영
- 2~5월·9~10월 09:00~18:00, 6~8월 09:00~18:30, 11~1월 09:00~17:30(입장 마감 폐장 1시간 전, 돈화문 보수 기간 서쪽 금호문 출입)
- 요금
- 전각 관람 3000원(매주 수요일 및 2026년 10월 29일~11월 15일 무료), 후원 관람 5000원 별도(무료 개방 제외)
- 휴무
- 매주 월요일
- 예약
- 전각은 자유 관람, 후원은 관람일 6일 전 10:00 누리집 예매 또는 당일 09:00 현장 선착순 발권
- 가는 길
- 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에서 도보 약 5분
- 문의
- 창덕궁관리소 02-3668-2300
- 주소
- 서울 종로구 사직로 161
- 운영
- 3~5월·9~10월 09:00~18:00, 6~8월 09:00~18:30, 11~2월 09:00~17:00(입장 마감 폐장 1시간 전)
- 요금
- 3000원, 매달 마지막 수요일 무료, 코리아 그랜드 페스티벌 기간(2026년 10월 29일~11월 15일) 무료
- 휴무
- 매주 화요일
- 가는 길
-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5번 출구 또는 안국역 1번 출구에서 국립민속박물관 방향 출입문 이용
- 문의
- 경복궁관리소 02-3700-3900
2026년 10월 기준 정보입니다. 운영시간과 요금은 바뀔 수 있으니 가기 전에 한 번 더 확인해 주세요.
전국을 다니며 여행 기사를 씁니다. 가 본 곳 가운데 다시 가고 싶은 곳만 TBAG에 적습니다.
Map / 지도에서 보기
서울, 여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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