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과 증류주 익는 양조장부터 고찰까지, 예산 5곳
사과를 증류해 오크통에 재우는 농원에서 술 이름의 주인 김정희의 생가, 100년 된 장터, 호수 위 현수교, 1308년 대웅전까지 잇는 예산 5곳이다.
예산 은성농원의 술에는 ‘추사’라는 이름이 붙는다. 사과를 발효하고 증류해 얻은 술들로,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서예가 김정희의 호를 따왔다. 40도짜리 증류주부터 12도 사과 와인까지 이 농원의 여러 술이 같은 이름을 나눠 쓴다. 호의 주인이 나고 자란 고택은 고덕면과 같은 예산군에 속한 신암면 용궁리에 지금도 남아 있다.
술 이름 하나가 고덕면 과수원과 신암면의 옛집을 한 줄로 묶어 놓는 셈이다. 1926년 인가를 받은 읍내 상설시장과 들녘에 물을 대는 예당호, 1308년에 지은 수덕사 대웅전은 예산의 다른 얼굴을 보탠다. 양조장과 고택은 18세기 양반가와 오늘의 증류주를 한 이름으로 이어 놓았다. 시장과 저수지, 산사는 장터와 농업용수, 고려 목조 건축이라는 이 고장의 오랜 내력을 보여 준다.
은성농원의 사과밭은 봄과 가을의 풍경이 뚜렷하게 갈린다. 봄에는 밭 전역에 사과꽃이 피고, 가을에는 가지마다 붉게 익은 사과가 달린다. 가을 수확철이면 그 나무에서 직접 사과를 따 볼 수도 있다. 꽃을 보러 오는 봄과 열매를 거두러 오는 가을은 같은 밭에서도 눈에 담는 장면이 확연히 갈리니, 어느 계절에 찾을지부터 정한다.
예산 사과를 증류해 오크통에서 1년 이상 익히는 양조장, 예산사과와인
예산사과와인은 은성농원 안의 양조장이다. 서정학 씨가 일궈 온 사과밭에서 사위 정제민 씨가 와인과 증류주를 내기 시작했다. 이곳은 농림축산식품부의 ‘찾아가는 양조장’에도 이름을 올렸다. 과일을 발효해 술을 만드는 일은 효모가 과육 속 당을 먹고 알코올을 내놓는 과정이다. 예산은 군 안에 황토사과특구를 따로 둔 사과 산지로, 양조장은 이 지역에서 거둔 사과를 원료로 쓴다.
양조장은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사과 브랜디 칼바도스처럼 사과즙을 발효한 뒤 다시 끓여 증류한다. 증류해 얻은 원액은 오크통에 담아 1년 이상 숙성한 다음에야 병에 옮긴다. 그렇게 나온 간판 술이 40도짜리 추사40으로,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 증류주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다. 발효에서 멈춘 술로는 12도 추사 애플와인과 블루베리 와인을 낸다.


즙을 짜 발효하고, 다시 끓여 증류하고, 오크통에서 1년 이상 묵힌다.
와이너리 투어에서는 술이 익는 저장고를 둘러보며 양조 과정 설명을 듣고, 이곳에서 내는 술을 맛볼 수 있다. 사과 와인과 추사40 같은 증류주가 각각 어떤 공정을 거치는지 한자리에서 짚어 보는 시간이다. 증류주로는 추사40 외에 25도와 40도 두 가지 도수로 나오는 추사백도 낸다. 맛본 술은 현장에서 병으로 살 수 있다. 운전을 맡은 사람은 시음 잔을 비울 수 없으니, 운전할 사람부터 정해 둔다.
사과를 따고 파이와 잼을 만드는 과수원, 은성농원
양조장 바깥 땅은 서정학 씨가 일궈 온 은성농원 과수원이다. 술의 원료로는 이 밭에서 거둔 열매에 더해, 예산 지역 농가에서 사들인 사과도 함께 쓴다. 저장고 견학이 술이 익는 자리를 보여 준다면, 사과 따기는 원료가 자라는 나무 아래에서 이뤄진다. 양조장과 과수원이 한 농원 울타리 안에 붙어 있어, 술과 사과밭을 따로 찾아 먼 길을 오갈 일은 없다.

농원 프로그램은 가을 수확철에 여는 사과 따기와 사과파이 만들기, 사과잼 만들기로 나뉜다. 사과 따기는 나무에 달린 열매를 직접 고르는 시간이고, 파이와 잼은 과일이 먹거리로 바뀌는 과정을 손으로 따라가는 시간이다. 여기에 와이너리 투어를 더하면 사과가 디저트가 되는 길과 오크통 속 술이 되는 길을 함께 볼 수 있다. 같은 과일이 쓰임에 따라 디저트로도, 술로도 남는다는 점이 이 농원을 찾는 재미다.
어린 자녀와 함께라면 시음이 중심인 투어보다 직접 손을 쓰는 사과 따기나 파이·잼 만들기 쪽이 하루에 어울린다. 가족 단위 여행자가 함께 즐기기 좋게 꾸린 프로그램들이다. 어른끼리라면 저장고 견학과 시음만으로도 양조장을 찾은 목적을 채울 수 있다. 만들기를 마친 뒤 저장고로 자리를 옮기면, 방금 만진 과일이 어떤 공정을 거쳐 병에 담기는지 앞뒤로 이어 볼 수 있다.
증류주 추사의 이름을 남긴 실학자의 생가와 해시계 석년, 추사고택
병에 붙은 ‘추사’의 주인 김정희(1786~1856)가 나고 자란 집은 같은 군 신암면 용궁리에 지금도 남아 있다. 추사고택이다. 김정희의 증조부 월성위 김한신이 영조의 딸 화순옹주와 혼인한 뒤 18세기 중엽에 지은 양반가로, 처음 지을 때는 53칸에 이르렀단다. 지금은 솟을대문과 사랑채, 안채, 사당만 남아 옛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사랑채 앞마당에는 해 그림자로 시각을 가늠하던 돌기둥이 하나 놓였다. 석년이라 부르는 해시계다. 안채와 사랑채 곳곳에는 추사의 글귀를 담은 현판과 편액을 걸어 두어, 건물을 돌며 그의 문장을 따라 읽게 된다. 고택 가까이 자리한 추사기념관은 그의 생애와 서예 작품을 따로 소개하는 공간이다. 고택 일원은 매화와 벚꽃, 수선화, 겹벚꽃이 차례로 피는 봄 나들이 장소로도 알려졌다.
집 옆으로는 김정희 묘역과 화순옹주 홍문이 이어진다. 그 가까이 자라는 줄기 껍질이 흰 소나무는 천연기념물 예산 용궁리 백송이다. 고택과 묘역, 홍문, 기념관이 한 구역에 모인 덕에, 증조부 혼인에서 증손 글씨까지 한 집안 내력을 차례로 따라갈 수 있다. 추사 글씨를 보러 온 사람이라면 기념관이, 조선 양반가 짜임을 보러 온 사람이라면 고택 마당이 하루의 중심이 된다.

옛 건물을 살려 고친 장터 광장에서 정육점 고기와 국수를 맛보는 곳, 예산상설시장
예산상설시장은 1926년에 인가를 받아 올해로 100년을 채운 읍내 전통시장이다. 1941년에 장터를 옮겼고, 지금 쓰는 상설시장 건물은 1980년에 지은 것이다. 이후 예산군과 더본코리아가 함께 벌인 구도심 상권 살리기 사업으로 손질을 거쳐 새로 문을 열었다. 옛 점포 건물은 허물지 않고 낡은 곳만 보수해 안전과 청결을 갖췄고, 굵은 글씨의 빛바랜 간판도 그대로 남았다.
장터 광장에서는 고기를 사 들고 와 직접 구워 먹는 방식이 자리를 잡았다. 먼저 광장의 대여 가게에서 굽는 도구를 빌려 장옥 가운데 테이블을 맡는다. 그다음 시장 안 정육점에서 손질한 한우나 돼지고기를 골라 와 불에 올린다. 정육점은 육류를 팔고 대여 가게는 도구와 자리를 내주는 식으로 맡은 몫이 갈렸다. 고기 곁에는 시장 점포의 국수나 사과 디저트, 지역 전통주를 곁들이기도 한다.


시장 안 먹거리는 옛 장터 메뉴에 새 재료를 더한 것이 많다. 쪽파나 꽈리고추를 넣은 소시지, 예산 사과 소스를 넉넉히 발라 구운 닭 바비큐가 그런 예다. 옛 맛 그대로 사랑받는 쪽으로는 시장에서 오랫동안 전통 방식으로 소면을 뽑아 온 제면소의 국수로 끓인 잔치국수가 꼽힌다. 장날이면 상설시장 둘레로 예산 오일장이 따로 서고, 제철 농산물을 펼친 노점이 골목까지 늘어난다.
둘레 40km 저수지 위 402m 현수교와 수변을 도는 열차, 예당호 출렁다리·모노레일
예당호는 홍문평야에 물을 대려고 막은 인공 저수지로, 이름은 들녘이 걸친 예산과 당진의 앞 글자를 하나씩 따서 지었다. 둘레는 40km로 국내 농업용 저수지 가운데 손꼽히는 규모다. 물가를 따라 민물낚시터가 많기로도 알려졌는데, 물고기 먹잇감이 넉넉한 덕이란다. 호수 북쪽 끝을 가로지르는 길이 402m의 현수교가 예당호 출렁다리다.
한가운데 주탑은 높이 64m로, 황새가 날개를 펼친 모습을 본떠 올렸다. 옆 수면에서는 음악분수가 정해진 회차에 맞춰 물을 뿜고, 날이 저물면 다리 전체에 경관 조명이 켜진다. 느린호수길은 출렁다리에서 중앙생태공원까지 5.2km를 잇는 데크길이며, 호수 서쪽 산책로 일부는 무장애 구간으로 꾸몄다. 다만 흔들림에 약한 사람에게 402m는 짧지 않은 거리라, 끝까지 건너기보다 물가 데크길을 걷는 쪽을 권한다.

모노레일은 출렁다리 입구에서 출발해 조각공원과 느린호수길 물가를 따라 1.3km를 한 바퀴 도는 수변 궤도 열차다. 선로 중간에는 경사가 급한 구간이 끼어 있고, 조형물 곁을 지나며 미디어파사드 구간도 거친다. 밤에는 선로를 따라 조명이 켜져, 출렁다리의 경관 조명과 함께 호수 북쪽 물가를 밝힌다. 한 바퀴를 도는 데 20분 남짓 걸리는 노선으로, 물가 산책로 곳곳의 공원과 팔각정을 레일 위에서 내려다보게 된다.
1308년에 지은 고려 대웅전의 옆면 짜임과 이응노의 자취, 수덕사
수덕사는 덕숭산 남쪽 기슭의 절로, 백제 위덕왕 때 처음 세웠다고 전하지만 창건을 적은 기록은 남지 않았다. 경내에서 나온 백제 와당(처마 끝을 마감하는 기와)이 그 추정을 받치는 근거다. 지금은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로, 총림 지정을 받아 덕숭총림이라 부른다. 창건 연대는 전승으로만 남았지만, 경내 대웅전은 지은 해가 기록으로 확인된다.
경내 초입에는 고암 이응노가 머물며 그림을 그린 한옥 수덕여관이 있다. 여관 살림은 그의 부인이 꾸렸고, 마당 바위에는 그가 새긴 암각화가 남았으며, 건물은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됐다. 바로 곁에는 수덕사 선미술관이 자리한다. 가람은 일주문에서 금강문, 사천왕문을 거쳐 대웅전까지 한 줄로 늘어서고, 길 양옆으로는 울창한 숲이 이어진다.

그 끝의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34년, 그러니까 1308년에 올린 맞배지붕 주심포 건물로, 국보로 지정됐다. 주심포는 기둥 머리 위에만 공포를 얹는 방식이라, 처마 아래 짜임이 다포 양식보다 간결하다. 지은 해가 확인된 국내 목조 건축 가운데서는 가장 오래된 축에 든다. 이 건물의 구조가 가장 잘 드러나는 쪽은 정면보다 옆면이다.
맞배지붕 아래 옆면에는 기둥과 보, 우미량(소꼬리 모양으로 휜 보)이 숨김없이 드러난다. 곧게 선 기둥과 가로지른 보, 휘어 오른 우미량이 엇갈리는 자리마다 면이 갈려, 옆 벽면이 삼각형과 사각형으로 나뉜다. 장식으로 그려 넣은 무늬가 아니라 지붕 무게를 받치는 부재가 그대로 만든 선이다. 대웅전 뒤로는 덕숭산 중턱 정혜사를 거쳐 정상까지 산길이 오른다. 정혜사까지는 ‘1080계단’이라 불리는 구간이 이어져, 산행 채비가 따로 필요하다.

이 기사에 나온 곳
- 주소
-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대몽로 107-25
- 예약
- 와이너리 투어·시음과 사과 관련 프로그램은 누리집 또는 전화로 사전 예약(프로그램마다 운영 시기 다름)
- 문의
- 041-337-9584
- 주소
-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추사고택로 261
- 운영
- 3~10월 09:00~18:00, 11~2월 09:00~17:00
- 휴무
- 추사기념관 월요일(공휴일이면 다음 날), 1월 1일·설날·추석 당일
- 요금
- 무료
- 주차
- 무료
- 문의
- 041-339-8248
- 주소
-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형제고개로 967
- 운영
- 점포마다 다름(예산 오일장은 날짜 끝자리 5일·0일)
- 이용
- 장터 광장 불판 대여 가게에 상차림 비용을 내고 자리를 잡은 뒤 시장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 와 굽는 방식
- 주소
- 출렁다리: 충청남도 예산군 응봉면 예당관광로 161 / 모노레일 승강장: 충청남도 예산군 응봉면 예당관광로 158
- 운영
- 출렁다리 09:00~22:00(12~2월 09:00~20:00) / 음악분수 월요일 휴무, 12~2월 중단 / 모노레일 2026년 10월 22일 차량 정비로 운행 중단 공지(재개 여부 문의)
- 휴무
- 출렁다리 매월 첫째 주 월요일(공휴일이면 다음 평일)
- 요금
- 출렁다리 무료 / 모노레일 성인 8000원
- 주차
- 무료
- 문의
- 041-339-8287(출렁다리), 041-333-1041(모노레일)
- 주소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안길 79
- 요금
- 무료(2023년 5월 문화재 관람료 폐지)
- 문의
- 041-330-7700
2026년 10월 기준 정보입니다. 운영시간과 요금은 바뀔 수 있으니 가기 전에 한 번 더 확인해 주세요.
전국을 다니며 여행 기사를 씁니다. 가 본 곳 가운데 다시 가고 싶은 곳만 TBAG에 적습니다.
Magazine / 2026년 11월호에서 이어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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