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축 고택부터 천년고찰까지, 완주 소양 8곳
진주·정읍·고창·무안에서 해체해 옮겨 온 한옥 마루에 앉아 종남산 능선을 바라보고, 옛 잠사를 고친 미술관과 저수지, 사찰, 산성, 2단 폭포를 차례로 이었다.
대청마루 끝에 걸터앉으면 사각 연못 너머로 종남산 능선이 정면에 들어온다. 등 뒤의 굵은 기둥과 서까래는 원래 이 산골 나무가 아니다. 진주와 정읍, 함평, 고창 등지에서 헐릴 뻔한 150~250년 된 고택들이 부재마다 번호표를 달고 해체돼 이 골짜기로 건너왔다. 못을 쓰지 않고 나무를 끼워 맞추는 한옥 결구법 덕분이다.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소양면에는 위봉산과 서방산, 종남산이 겹겹이 두른 골짜기가 있다. 언덕에는 타지에서 옮겨 온 고택과 미술관이 모였고, 고갯길 위아래로는 옛 산성과 폭포, 평지 사찰이 이어진다. 아침저녁 바람이 선선해진 계절에 한옥 마루부터 폭포까지 하루 코스로 묶어 돌기 알맞다.
주민이 일군 골짜기 마을과 3갈래 생태숲, 오성한옥마을
옛 오도리와 외성리가 합쳐지며 한 글자씩 딴 오성마을에는 50가구 안팎, 주민 80여 명이 산다. 본래 참나무로 숯을 굽고 닥나무로 한지를 뜨던 산골이었다. 30가구 남짓 남았던 동네가 지금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건 2012년 봄부터다. 마을회관조차 없어 이장 집에 모인 주민들이 뒷산 숲과 저수지, 옛집을 자원 목록으로 적어 내려갔다. 이 마을에 사는 장택주 국립목포대 담양캠퍼스 한옥건축과 교수도 공간 설계를 거들었다.

지금 골목에 모인 한옥은 모두 23채다. 타지에서 옮겨 온 이축 고택이 6채, 새로 지은 집이 14채, 살던 집을 고친 개축 가옥이 3채다. 일제강점기 도시형 한옥 700여 채가 촘촘히 붙은 전주한옥마을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조선 후기 사대부가의 넉넉한 골격을 지닌 집들이 낮은 돌담을 따라 드문드문 들어섰다. 한 해 70만 명이 다녀가지만, 평일 낮 골목에는 계곡 물소리와 새소리만 들린다.
담장마다 걸린 나무 문패를 살피며 걸으면 ‘녹운재’나 ‘소담원’ 같은 당호가 차례로 나온다. 옛 이장 집을 고친 ‘오소소카페’는 해설사와 사무장 등 주민들이 당번을 정해 꾸리는 찻집이다. 쌍화탕과 대추차를 직접 달여 낸다. 옆 체험관에서는 다관과 숙우를 두고 첫 잔 예열부터 3번째 우림까지 익히는 90분 다도 프로그램도 예약제로 열린다.
마을 뒤편 ‘문화생태숲’은 완주군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걷는 예약제 숲길이다. 산비탈을 따라 산책로가 위아래 3갈래로 나 있다. 가장 완만한 아래쪽 코스를 고르면 1시간 안팎에 주요 지점을 다 지난다.
상수리·굴참·졸참·갈참·떡갈·신갈나무까지 참나무 6종 군락과 옛 숯가마터, 돌무더기 비탈인 너덜겅, 자작나무 숲이 이어진다. 솔잎이 3가닥인 북미산 리기다소나무와 폭신한 굴참나무 코르크 껍질을 직접 만져 보며 설명을 듣는다. 너덜겅 구간은 돌 틈이 깊으니 바닥이 단단한 운동화를 신을 것.
노출 콘크리트 미술관 위 250년 이축 고택, 아원
마을 언덕 가장 높은 곳에는 ‘아원’이 있다. ‘우리 모두의 정원’이라는 뜻으로, 한옥 스테이와 갤러리를 합친 공간이다. 입구에 닿으면 기와지붕 대신 회색 노출 콘크리트 벽면이 먼저 나온다. 경사진 땅을 살려 1층에 현대 미술관과 카페를 묻고, 그 지붕 위 마당에 조선시대 고택을 얹었기 때문이다.

철문을 지나 이이남 작가의 미디어아트 작품을 스치면 콘크리트 벽에 뚫린 좁은 통로가 이어진다. 회랑 끝 전시실은 천장 틈으로 스민 빛이 낮은 수면과 콘크리트 바닥을 비추도록 설계했다. 어두운 실내 의자에 앉아 쉬었다 가기 좋다.
전시실 뒤 대나무 숲 계단을 오르면 그제야 고택 마당이다. 언덕 위에 모인 한옥 4채는 태어난 곳이 저마다 다르다. 안채 격인 설화당과 사랑채 연하당은 경남 진주 지수면에서 옮겨 온 250년 고택이다. 대청이 넓은 ‘천지인(만휴당)’은 전북 정읍에서 온 150년 고택이고, 작은 ‘서당(고진당)’은 전남 함평에서 가져왔다. 그 옆에는 노출 콘크리트로 지은 현대식 별채 천목다실이 나란히 섰다.

가장 오래 머물게 되는 곳은 정읍에서 온 천지인이다. 벽을 막지 않고 대청마루 3면을 모두 터놓았다. 마루 끝에 앉으면 앞마당 연못 너머로 종남산 능선이 정면에 걸린다.
바람이 불면 수면에 비친 처마 그림자가 잔잔하게 흔들린다. 진주에서 온 설화당과 연하당 쪽 마당은 한결 호젓해 툇마루에 기대 쉬기 좋다. 방탄소년단(BTS)이 화보집 ‘2019 BTS SUMMER PACKAGE’를 찍으며 일주일간 머물렀던 숙소도 이 집들이란다.
못을 쓰지 않고 나무를 짜 맞춘 고택 4채가 진주·정읍·함평에서 해체돼 완주 산골 언덕에서 2번째 삶을 얻었다.
한옥 4채와 별채는 본래 숙박객 전용 공간이다. 다만 투숙객이 체크인하기 전, 오후 4시간 동안만 일반 관람객에게도 마당과 마루를 연다. 조용한 관람을 위해 8세 미만 아동은 입장할 수 없고, 대관이나 촬영이 있는 날에는 문을 닫는다. 개방 시간이 짧으니 소양면 일정을 짤 때는 아원 관람 순서를 중심에 두고 앞뒤 동선을 맞추는 편이 낫다.
문화유산 장인이 복원한 옛집과 예약제 책방, 소양고택·플리커책방·두베
아원에서 돌담길을 따라 내려오면 ‘소양고택’이 나온다. 개발로 헐릴 뻔한 전북 고창과 전남 무안, 경북 포항 등지의 100~200년 된 고택들을 해체해 옮겨 왔다. 국가무형유산 대목장을 비롯한 장인들이 수년에 걸쳐 옛 방식 그대로 다시 세웠다. 콘크리트 건물을 결합한 아원과 달리, 이곳은 기와 처마선과 비워 둔 잔디 마당의 옛 비례를 살리는 데 집중했다.

혜온당과 여일루를 포함한 고택 6채가 한옥 스테이로 쓰인다. 툇마루 안쪽은 숙박객만 들어가지만, 한 울타리 안 독립서점 ‘플리커책방’과 카페 ‘두베’는 당일치기 방문객도 드나든다. 묵지 않더라도 책방이나 카페에 들르면 고택 마당을 함께 거니는 셈이다.

한옥 1채를 쓰는 플리커책방은 완주군에 처음 생긴 독립서점이다. 방문 하루 전까지 예약한 인원만 정해진 시간대에 들어간다. 입장권에 음료 1잔이 포함된다. 사람이 몰리지 않아 오래된 서까래 아래서 서점지기가 고른 책을 조용히 펼쳐 보기 좋다. 철에 따라 심야 책방이나 북토크, 소규모 재즈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책방 옆 카페 두베는 잔디 마당을 사이에 두고 고택과 마주 선 현대 건물이다. 실내 통창 너머로 종남산 능선과 산허리에 걸린 구름이 트여 보인다. 1층 홀에는 수제 진공관 앰프와 대형 스피커를 두어 음악을 틀어 준다. 미숫가루 크림을 얹은 ‘소양미숫페너’가 대표 메뉴.
잠사 건물을 고친 미술관과 제방 위 홀로 선 소나무, 오스갤러리·오성제
고택들이 모인 언덕에서 마을 초입으로 내려오면 저수지 건너편에 ‘오스갤러리’가 있다. 아원을 만든 오스아트그룹이 먼저 연 미술관 겸 카페다. 1987년 서울 화신백화점 철거 때 나온 붉은 벽돌과 전주초 폐목재를 구해 두었다가, 1991년 옛 잠사 터에 개인 서재를 먼저 지었다고. 그 뒤 누에를 기르던 잠사 건물을 고치고 노출 콘크리트 전시동과 철골 카페를 덧붙여 지금 모습을 갖췄다.

잔디 마당 양쪽에 붉은 벽돌 카페와 잿빛 콘크리트 갤러리가 마주 서 있다. 카페 실내는 일부러 조도를 낮췄다. 실내를 어둡게 해 두니 통유리창 너머 산비탈 정원의 녹음이 더 또렷해진다. 궁궐 후원의 화계(계단식 화단)를 본떠 다듬은 산비탈 정원과 작은 폭포를 보며 커피를 마신다. 주말 오후에는 통창 앞자리가 일찍 차니 오전에 들르는 편이 낫다.

오스갤러리 정문을 나서면 바로 저수지 ‘오성제’다. 종남산과 서방산 계곡물이 모인 수면 가장자리에 소나무 1그루와 통나무 벤치가 놓였다. 방탄소년단 화보집에 나온 뒤 ‘BTS 소나무’라는 별명이 붙은 나무다. 지금도 국내외 팬들이 찾아와 물가 벤치에서 사진을 찍는다.
오성제가 가장 잘 보이는 자리는 제방 위 흙길이다. 마을 뒤편 문화생태숲 산책로는 나뭇가지에 가려 수면이 시원하게 보이지 않으니까. 제방 둑길로 올라가면 잔잔한 물빛과 소나무, 산자락 한옥 지붕이 한눈에 담긴다. 일교차가 큰 가을 아침에는 물안개가 자욱하고, 해 질 무렵에는 종남산 능선 너머로 노을이 붉다.
일직선 평지 가람에 모인 보물 6건, 완주 송광사
오성제 삼거리에서 송광수만로를 따라 남서쪽으로 3km쯤 내려가면 천년고찰 ‘완주 송광사’가 나온다. 순천 조계산 송광사와 한자까지 같아 흔히 지역 이름을 앞에 붙여 부른다. 통일신라 말기인 867년 보조체징 선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옛 오성마을에 한지 뜨는 기술을 전해 준 절이기도 하다.
산중 사찰 대다수가 비탈에 축대를 쌓아 전각을 올리는 것과 달리, 이곳은 평지에 일주문부터 금강문, 천왕문, 대웅전까지 일직선으로 놓였다. 가파른 돌계단이 전혀 없어 산책하듯 편하게 경내를 돈다.
지정 문화유산도 많다. 2024년 4월 보물이 된 금강문을 비롯해 대웅전, 종루, 소조사천왕상이 보물이다.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복장유물 포함)과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소조십육나한상 일괄까지 보물 6건이 한 경내에 있다. 천왕문 안 ‘소조사천왕상’은 인조 14년(1636)부터 13년에 걸쳐 진흙으로 빚은 높이 4.25m 거상이다. 현존하는 소조 사천왕상 가운데 손꼽히는 크기다.
대웅전 안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도 진흙으로 만든 불상이다. 병자호란 직후인 인조 19년(1641),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끌려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의 무사 귀환을 빌며 전국 승려들이 힘을 모았다. 위에서 보면 열 십(十) 자 모양이 되는 2층 누각 ‘송광사 종루’는 2026년 11월 말까지 해체 보수 중이라 가설 덧집에 가려져 있다. 당일형과 휴식형 템플스테이는 공사 기간에도 예약제로 운영한다.
태조 어진 피란처로 고쳐 쌓은 성과 60m 물줄기, 위봉산성·위봉폭포
오성제 삼거리에서 북동쪽 고갯길을 차로 10분쯤 오르면 해발 500m대 고원 분지에 둘러싸인 ‘위봉산성(사적)’이 나온다. 고려 고종 대(13세기) 처음 쌓은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 숙종 원년(1675)부터 7년에 걸쳐 둘레 약 8.5km 석성으로 고쳐 쌓은 성이다.

이 산성은 일반 군사 요새와 목적이 다르다. 유사시 전주 경기전에 모신 조선 태조 어진(초상화)과 시조 이한의 위패를 피란시키려고 성 안에 행궁을 두었다. 고종 31년(1894) 동학농민혁명 때 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하자 실제로 어진과 위패를 이곳 위봉사 보광명전으로 옮겨 모셨단다. 지금 도로가 지나는 고갯마루에는 홍예 돌문이 온전한 서문지와 성벽 일부가 남아 있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바로 성벽 위로 올라갈 수 있다.
서문지를 지나 성 안쪽 마을로 조금 더 들어가면 백제 무왕 5년(604) 창건 설화가 전하는 ‘위봉사’가 있다. 조선 후기에는 산성과 행궁을 지키는 승병 사찰이었고, 중심 전각인 17세기 목조 건물 ‘보광명전’이 보물이다. 아담한 산사여서 서문지와 묶어 30분 안팎이면 다 돌아본다.

위봉사에서 고개를 마저 넘으면 ‘위봉폭포(명승)’다. 기암괴석 벼랑과 활엽수림 사이로 높이 60m 물줄기가 2단으로 꺾여 떨어진다. 예부터 전주·완주 일대 ‘완산 8경’으로 꼽혔고, 2021년 명승이 됐다. 조선 후기 판소리 8명창 가운데 한 명인 권삼득(1772~1841)이 이 폭포 아래서 소리를 수련해 득음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폭포를 보는 자리는 2곳이다. 고갯마루 도로변 폭포정에서는 건너편 골짜기와 2단 물줄기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위봉터널을 지나 데크 계단 전망대로 내려가면 물보라가 날리는 폭포 정면까지 가까이 다가선다. 가뭄에는 수량이 줄어드니 비가 내린 뒤나 단풍이 드는 10월 하순~11월 초순에 찾을 것.
이 기사에 나온 곳
- 주소
- 전북 완주군 소양면 오도길 73
- 운영
- 마을 골목 상시 개방, 오소소카페 10:00~19:00, 문화생태숲 해설 10:00~16:00 회차 운영
- 요금
- 마을 산책·숲 해설 무료, 다도 1인 1만 5000원(90분, 한복 제공 포함), 한옥문화 프로그램 5000원(60분)
- 예약
- 문화관광해설사 통합예약 누리집(kctg.or.kr) 또는 전화 예약 필수, 공동 한옥스테이(2인실 10만~12만 원, 4인실 15만~18만 원) 전화 문의
- 문의
- 오성한옥마을 063-243-1022, 완주군 관광축제과 063-290-3991
- 주소
- 전북 완주군 소양면 송광수만로 516-7
- 운영
- 갤러리 11:00~17:00, 고택 관람 12:00~16:00(입장 마감 15:40)
- 요금
- 관람료 1인 1만 원(음료 별도 4000원, 8세 미만 입장 불가)
- 휴무
- 대관·촬영 시 임시 휴관(공식 누리집 사전 공지)
- 문의
- 063-241-8195
- 주소
- 전북 완주군 소양면 송광수만로 472-23
- 운영
- 두베카페 10:00~18:00(연중무휴), 플리커책방 13:00~17:00
- 요금
- 플리커책방 입장료 1인 1만 원(음료 포함)
- 예약
- 플리커책방은 방문 하루 전까지 예약 필수, 한옥 숙박은 매월 1일 예약 오픈
- 문의
- 소양고택·두베카페 063-243-5222, 플리커책방 063-246-6222
- 주소
- 전북 완주군 소양면 오도길 24
- 운영
- 평일 09:30~19:00, 주말 10:00~19:30(방문 전 확인 권장)
- 주차
- 전용 주차장 무료
- 문의
- 063-244-7116
- 주소
- 전북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1002
- 운영
- 연중 상시 개방
- 요금
- 무료
- 가는 길
- 오성한옥마을 초입, 오스갤러리 맞은편 제방
- 주소
- 전북 완주군 소양면 송광수만로 255-16
- 운영
- 일출~일몰(연중무휴)
- 주차
- 무료
- 예약
- 당일형·휴식형 템플스테이 사전 예약(십자형 종루는 2026년 11월 30일까지 해체 보수 중)
- 문의
- 종무소 063-243-8091, 템플스테이 063-241-8090
- 주소
- 전북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위봉사 위봉길 53)
- 운영
- 위봉산성 서문지 상시 개방, 위봉사 주간 개방
- 요금
- 무료
- 가는 길
- 오성한옥마을에서 송광수만로 고갯길로 차로 약 10분
- 주소
- 전북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 운영
- 상시 개방(별도 매표소 없음, 호우 직후 계곡 접근 주의)
- 요금
- 무료
- 문의
- 완주군청 063-290-2613
2026년 10월 기준 정보입니다. 운영시간과 요금은 바뀔 수 있으니 가기 전에 한 번 더 확인해 주세요.
전국을 다니며 여행 기사를 씁니다. 가 본 곳 가운데 다시 가고 싶은 곳만 TBAG에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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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여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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