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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질 녘 역광을 받은 따라비오름 억새와 멀리 보이는 산줄기
OUTDOOR서울 외

불 놓고, 베고,다시 심어 지킨 억새밭 6곳

불을 놓던 제주 목장과 정선 민둥산, 해마다 억새를 베는 서울 하늘공원, 다시 심는 간월재와 명성산까지, 사람이 지켜 온 억새밭 6곳과 걷는 길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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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셋째 주말, 억새 축제 2곳이 하루 차이로 문을 연다. 포천 명성산은 16일, 서울 하늘공원은 17일이다. 2곳 모두 사람이 억새를 심어 가꾸는 억새밭이다.

억새밭은 그냥 두면 나무가 들어와 숲이 된다. 예전에는 제주 중산간 목장에서 말과 소를 풀어 키우며 해마다 들에 불을 놓았고, 정선 민둥산 주민들도 산에 불을 놓았다. 불이 들고 가축이 풀을 뜯는 땅에는 나무가 자리 잡지 못해 풀밭이 남았다.

지금은 사람이 억새를 베거나 다시 심어 억새밭을 지키기도 한다. 옛 목장과 불놓기의 흔적이 남은 곳부터 사라지는 억새를 다시 심는 곳까지, 억새밭이 생기고 유지된 방식이 서로 다른 6곳을 골랐다.

쓰레기 산에 옮겨 심은 억새, 하늘공원

발아래는 쓰레기 산이다. 난지도에 1978년부터 15년 동안 서울의 쓰레기를 묻었고, 그 위를 덮어 2002년 공원으로 열었다. 매립지를 덮은 차단막 위에 깐 흙은 60cm 남짓이었다. 흙이 얕고 땅이 내려앉을 수 있어 큰 나무 대신 풀밭을 만들기로 하고, 제주 산굼부리를 비롯한 전국 23곳에서 억새를 옮겨 심었다.

억새밭 사이 흙길을 걷는 사람들
억새밭 사이 흙길을 걷는 사람들
길을 사이에 두고 잎 색이 다른 억새
길을 사이에 두고 잎 색이 다른 억새

이곳 억새는 해마다 벤다. 묵은 잎을 걷어 내야 이듬해 새순이 고르게 올라온다. 서울시는 그동안 11~12월에 베던 것을 2026년부터 새싹이 돋기 전인 3~5월로 늦추고, 말라 죽은 포기는 새로 심기로 했다. 겨울 동안 황조롱이와 새매 같은 새가 억새밭에 머물 수 있게 하려는 조치로, 2026년 축제가 끝난 뒤에도 억새는 이듬해 봄까지 남는다.

맹꽁이전기차에서 내리면 바로 억새밭이고, 하늘계단으로 걸어 오를 수도 있다. 아이나 어르신과 함께라면 6곳 가운데 이곳이 가장 무난하다. 전기차가 해 진 뒤에도 한동안 다녀 노을을 보고 내려오기도 쉽다.

서울 내에 자리한 곳인 만큼 억새 축제 기간에는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린다. 입구를 벗어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비교적 한적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을 참고할 것. 차를 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편이 좋다.

목장 불이 식생을 가른 곳, 산굼부리

매표소를 지나자마자 산책로 양옆으로 억새가 늘어선다. 10월 중하순이면 사람 키보다 더 큰 억새를 만날 수 있다. 완만한 오르막 끝, 분화구 가장자리의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분화구 안은 나무로 빈틈이 없다.

돌을 깐 산책로 양옆으로 이어진 억새
돌을 깐 산책로 양옆으로 이어진 억새
분화구 너머로 보이는 오름들
분화구 너머로 보이는 오름들

산굼부리 둘레는 예부터 목장이었다. 산굼부리를 운영하는 회사는 옛 자료를 들어, 방목지의 묵은 풀과 병충해를 없애려고 해마다 불을 놓았다고 설명한다.

움푹 꺼진 분화구 안은 지형 덕에 그 불을 피했고, 그래서 바깥 초지와 달리 숲이 남았다. 분화구 둘레 들판에는 지금 억새가 자란다.

제주에서 오름에 오르기는 부담스러운데 억새는 보고 싶은 날이라면, 입장료를 내고 이 길을 걷는 편이 낫다. 억새는 10월 중순부터 11월까지 볼 만하고, 시간은 이른 아침이나 해 질 무렵을 권한다.

말을 키우고 불을 놓던 들판, 따라비오름

따라비오름은 오르기도 전에 억새밭이다. 입구에는 방목하는 소와 말이 오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는 문이 있고, 그 문을 지나면 사방이 억새다. 정상까지는 20~30분이면 닿고, 봉우리를 잇는 능선 길도 걷기에 부담이 크지 않다.

해 질 녘 역광을 받은 억새. 멀리 풍력발전기가 흐릿하다
해 질 녘 역광을 받은 억새. 멀리 풍력발전기가 흐릿하다
능선을 따라 난 흙길과 비탈에 드문드문 선 작은 나무
능선을 따라 난 흙길과 비탈에 드문드문 선 작은 나무

따라비오름 아래 들판은 조선 시대 목장 자리다. 번널오름, 큰사슴이오름까지 900ha쯤 되는 초지에 1794년부터 1899년까지 갑마장이 있었다. 여러 목장에서 기른 말 가운데 최상급인 갑마만 골라 키워 조정에 올리던 곳이다.

제주 중산간 초지는 말과 소를 풀어 키우고 늦겨울마다 들에 불을 놓으면서 나무가 자리 잡지 못한 땅이다. 이 불을 방애라고 부른다. 1960년대 중반 불놓기가 금지되고 1980년대 중반부터 방목까지 줄면서, 제주 오름 상당수가 숲으로 바뀌고 있다. 따라비오름은 아직 초지가 남은 오름으로 꼽히고, 옛 목장 자리에 1933년 들어선 가시리 마을공동목장에서는 지금도 소를 키운다.

제주에서 짧게 걷고 억새와 해넘이를 함께 보고 싶다면 따라비오름이 맞다. 해는 한라산 쪽으로 지고, 오르는 길이 짧아 해 지기 1시간 전에 오르기 시작해도 능선에서 해를 보내기에 넉넉하다. 억새는 겨울까지 남지만, 가장 보기 좋은 때는 10~11월이다.

다시 심어 되살리는 고개, 간월재

배내골 사슴농장 옆 배내2공영주차장에서 간월재까지는 6km 남짓한 임도를 1시간 30분에서 2시간 걷는다. 경사가 완만하고 길이 잘 닦여 있지만, 왕복 12km 남짓이라 반나절은 잡아야 한다. 간월산과 신불산 사이 고갯마루에 오르면 평원이 억새밭이고, 휴게소 옆 봉우리 쪽으로 몇 걸음 더 오르면 억새밭이 한눈에 들어온다.

억새밭을 가로지르는 나무 데크와 뒤편의 산줄기
억새밭을 가로지르는 나무 데크와 뒤편의 산줄기

울산시가 1968년과 2011년 항공사진을 견주어 보니, 간월재 억새밭은 343만㎡에서 16만 4000㎡로 줄어 있었다. 표준 축구장으로 치면 480개 넓이에서 23개 넓이만 남았다. 울주군이 꼽는 원인은 넷이다. 소나무가 번졌고, 등산객이 늘었고, 데크와 계단을 놓으며 억새밭이 상했고, 기후가 바뀌었다.

울주군은 2024년 4억 5000만 원을 들여 잡관목을 걷어 내고 억새 15만여 포기를 심었다. 2025년에는 뿌리를 흙째 떠서 옮겨 심는 뗏장 이식을 썼는데, 억새 보전에 이 방법을 쓴 것은 국내 처음이다. 2026년 5월부터는 울산생명의숲과 부산대 조경학과 연구실이 조사구 12곳을 두고 회복 과정을 지켜본다. 부산대 연구진은 이대로 가면 10년 안에 억새밭이 지금의 절반 이하로 줄 수 있다고 봤다.

가파른 산길은 부담스러워도 오래 걷는 데 자신 있다면 간월재가 맞다. 억새밭에서는 데크와 길 밖으로 나가지 말자. 탐방객의 발길도 억새밭을 줄인 원인으로 꼽힌다.

해는 서쪽 능선으로 진다. 노을을 보고 내려오는 임도에는 가로등이 없어 스마트폰 불빛으로는 모자라다. 손전등은 필수다.

억새 11만 본을 새로 심은 산, 명성산

산정호수 상동주차장에서 비선폭포와 등룡폭포를 지나 억새밭까지 2시간 가까이 오른다. 등룡폭포를 지나면 돌부리와 자갈이 많은 오르막이 1시간쯤 이어진다. 억새밭은 정상 아래 팔각정 쪽 비탈에 있다.

11월 초의 명성산 억새밭과 붉은 난간 데크
11월 초의 명성산 억새밭과 붉은 난간 데크

포천시는 군락지를 되살리려고 2023년 억새 11만 본을 심고 등산로를 정비했다. 2025년에도 1억 원을 들여 군락지 7만 2000㎡를 손봤다. 2026년 축제 개막식에서는 억새 보전 선언을 하고, 등산객과 함께 쓰레기를 주우며 달리는 캠페인도 연다.

돌길이라 어두울 때 내려오기는 위험해, 명성산은 6곳 가운데 낮에 다녀오기를 권하는 유일한 곳이다. 날짜도 서두르는 편이 낫다. 11월에 들어서면 팔각정 아래 억새밭이 누렇게 말라 간다. 억새밭 비탈은 그늘이 없고 바람이 세니 겉옷을 챙기자.

주민들이 불을 놓던 산꼭대기, 민둥산

증산초등학교 앞에서 오르는 길은 완만한 3.2km와 가파른 2.6km 가운데 고를 수 있고, 어느 쪽이든 2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7부 능선까지는 소나무와 잡목이 우거진 숲이고, 숲을 벗어나면 나무가 거의 없는 둥근 구릉이 나타난다. 민둥산 정상부의 억새밭이다.

9월 중순, 아직 푸른 민둥산 정상부 능선
9월 중순, 아직 푸른 민둥산 정상부 능선
소나무 옆으로 난 통나무 난간 계단과 억새
소나무 옆으로 난 통나무 난간 계단과 억새

예전 주민들은 산나물이 잘 나라고 해마다 이 산에 불을 놓았다. 정선군은 불 때문에 나무가 자라지 못한 산꼭대기에 억새가 퍼졌다고 설명한다.

억새는 1980년대 중반부터 줄기 시작했다. 정선군은 참싸리와 잡목, 쑥이 번진 것을 원인으로 들고, 해마다 잡목을 걷어 내고 억새를 다시 심어 왔다. 2020년부터는 주민들이 민둥산 참억새 보존회를 꾸려 모종을 길러 심는다. 정선군은 2026년 봄에도 억새밭 30ha의 묵은 줄기를 베고 참억새를 새로 심는 사업을 추진했다.

9월 중순은 억새 이삭이 이제 막 올라오는 때다. 축제는 9월에 시작해도 억새꽃은 10월 중순부터 11월 초순이 제철이다. 정상부 억새는 사람 키를 넘고 빽빽해 길 밖으로는 들어서기 어렵다.

축제는 11월 8일까지인데, 축제 기간에는 산 중턱 발구덕까지 차가 들어가지 못하고 연계 셔틀버스도 8월부터 멈췄다. 민둥산운동장이나 능전주차장에 차를 두고 걸어서 오르니, 오가는 시간까지 반나절은 잡아야 한다. 늦은 오후에 출발하면 숲길을 내려오는 동안 해가 지니 손전등을 챙기자.

이 기사에 나온 곳

하늘공원PLACE
주소
서울 마포구 하늘공원로 95
가는 길
지하철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마포구청역에서 걸어서 40분쯤. 난지천공원 주차장에서 맹꽁이전기차를 타거나 하늘계단으로 오른다
주차
난지천공원 주차장
소요 시간
맹꽁이전기차에서 내리면 바로 억새밭
운영
서울억새축제 10월 17~23일 10:00~21:00, 맹꽁이전기차 10~11월 09:00~19:00(올라가는 막차 18:30)
요금
맹꽁이전기차 일반 편도 2000원, 왕복 3000원
문의
서부공원여가센터 02-300-5574
산굼부리PLACE
주소
제주 제주시 조천읍 비자림로 768
소요 시간
매표소를 지나면 바로 억새 산책로
운영
9~10월 09:00~18:40(입장 마감 18:00), 11~2월 09:00~17:40(입장 마감 17:00), 연중무휴
요금
성인 7000원, 청소년⁠·어린이 6000원, 경로⁠·제주도민⁠·국가유공자⁠·장애인 5000원
문의
064-783-9900
따라비오름PLACE
주소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산62
소요 시간
입구에서 정상까지 20~30분
간월재PLACE
가는 길
배내골 사슴농장 옆 배내2공영주차장에서 임도로 오른다(편도 6km 남짓)
주차
배내2공영주차장
소요 시간
억새밭까지 편도 1시간 30분~2시간
명성산PLACE
가는 길
산정호수 상동주차장에서 1코스(비선폭포⁠·등룡폭포⁠·억새밭⁠·팔각정⁠·정상)
주차
산정호수 상동주차장
소요 시간
억새밭까지 편도 2시간 가까이
운영
억새꽃축제 10월 16~18일(개막식 17일 18:00)
문의
포천시 산림휴양팀 031-538-3342
민둥산PLACE
주소
강원 정선군 남면 민둥산로 12
가는 길
증산초등학교 앞에서 출발(완만한 길 3.2km, 가파른 길 2.6km). 축제 기간(9월 18일~11월 8일)에는 발구덕 일원 차량 진입 전면 통제, 민둥산 연계 셔틀버스는 2026년 8월 1일부터 운행 중단
주차
민둥산운동장 주차장, 능전주차장(제2주차장)
소요 시간
정상까지 편도 2시간 안쪽(두 길 모두)
운영
민둥산은빛억새축제 11월 8일까지
문의
정선군 1544-9053, 민둥산은빛억새축제위원회 033-591-9141

2026년 10월 기준 정보입니다. 운영시간과 요금은 바뀔 수 있으니 가기 전에 한 번 더 확인해 주세요.

노을
에디터 노을

전국을 다니며 여행 기사를 씁니다. 가 본 곳 가운데 다시 가고 싶은 곳만 TBAG에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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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데이터: svg-maps (CC BY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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