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대왕릉은 어느 쪽?중국 지안 고구려 유적
백두산 가는 육로에서 들른 지린성 지안의 태왕릉, 광개토대왕릉비, 장군총.광개토왕의 무덤으로 지목된 곳이 둘인 사정과 현지 안내문의 관점까지 짚었다.

백두산에 육로로 가 본 사람은 안다. 창춘이나 선양에서 백두산까지는 버스로 한나절이 걸린다. 2023년 취재 때 나도 이 길을 달렸다. 창밖으로 원시림이 이어지고 압록강 너머로 북한 땅이 지척이라, 5시간 넘게 달리는 동안 잠이 오지 않았다.
그 길에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곳이 있다. 지린성 지안(集安)의 고구려 유적이다. 버스에서 내려 광개토대왕릉과 장군총을 둘러봤다. 타지에서 우리 위인의 무덤을 만나니 쓸쓸해 보였는데, 생각해 보면 원래 그들이 호령하던 땅이 여기다.
400년 넘게 고구려 도읍, 지안
지안은 고구려가 400년 넘게 도읍으로 삼은 국내성이 있던 도시다. 2004년 ‘고구려 왕도와 왕릉 및 귀족의 묘’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올랐다. 도성 3곳과 고분 40기가 여기에 속한다.
핵심 유적은 시가지에서 멀지 않다. 태왕릉과 광개토대왕릉비는 시가지 동북쪽에 붙어 있고, 장군총은 조금 더 동쪽이다. 백두산을 오가는 육로가 이 도시를 지난다면 내려서 볼 만한 배치다.

벽돌에 새긴 이름, 태왕릉
흔히 광개토대왕릉이라 부르는 무덤의 이름은 태왕릉(太王陵)이다. 1913년 조사 때 ‘願太王陵安如山固如岳’, 곧 “태왕릉이 산처럼 편안하고 산악처럼 굳건하기를 바란다”고 새긴 벽돌이 나왔다. 광개토왕릉은 묻힌 사람이 누구인지 추정해 붙인 호칭이다.
태왕릉은 돌을 계단처럼 쌓아 올린 계단식 돌무지무덤이다. 기단 한 변이 60m대, 지금 남은 높이는 14~15m다. 자료마다 규모가 다르게 적힐 만큼 많이 허물어졌다.

막상 무덤 앞에 서니 생각보다 초라했다. 우리가 오래 기억해 온 인물인데, 여기서는 변방의 영웅 정도로 다루는 느낌이라 아쉬웠다. 관리는 깔끔하게 하는 편이다.
광개토왕의 무덤으로 보는 근거는 이 벽돌 명문과 위치다. 왕릉급 고분 가운데 광개토대왕릉비와 가장 가깝고, ‘辛卯年(신묘년)’이 새겨진 청동 방울도 나왔다. 다만 광개토왕릉으로 지목된 무덤이 지안에 하나 더 있다. 장군총이다.
유리 너머로 읽는다, 광개토대왕릉비
태왕릉에서 동북쪽으로 몇 분 걸으면 광개토대왕릉비가 나온다. 414년 아들 장수왕이 세운 높이 약 6.39m의 사면비다. 처음 새긴 글자는 약 1775자로 추정하는데, 지금은 140자 넘게 판독이 안 된다.
비가 겪은 일이 만만치 않다. 1880년 전후에 다시 발견됐는데, 조사 과정에서 일부 작업자가 이끼를 없애려고 비면에 말똥을 발라 태웠다. 그때 금이 가고 표면이 떨어져 나갔다. 1900년대 초에는 탁본업자가 탁본을 선명하게 뜨려고 석회를 발라 일부 글자를 손봤다.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대목은 32자로 된 신묘년조다. 해석을 두고 오래 논쟁이 이어졌다. 일본 참모본부가 비문을 조작했다는 주장이 1972년에 나왔지만, 지금 학계에서는 거의 지지받지 않는다. 신묘년조 해석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다만 왜가 한반도 남부를 정복해 거점으로 삼았다는 견해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비는 비각 안에 세워 두고 사방을 방탄유리로 막았다.


6m가 넘는 비를 유리 너머로 보자니 답답하지만, 비가 겪은 일을 알고 나면 이해가 된다.
보존은 이쪽이 낫다, 장군총
장군총은 태왕릉에서 동북쪽으로 약 2km 떨어져 있다. 한 변 약 31m, 남은 높이 약 13m로 태왕릉보다 작지만 보존 상태는 훨씬 좋다. 7층 계단을 1m 정도씩 들여쌓아 형태가 또렷하다. 일제강점기에 ‘동방의 금자탑’이라 불린 것도 이 보존 상태 덕분이다.

문제는 이름이다. 중국은 이 무덤을 장수왕릉(长寿王陵)으로 공식 명명했다. 반면 한국 학계에서는 광개토왕릉으로 보는 견해가 조금 더 우세하다. 왕이 살아 있을 때 자기 무덤을 짓는 수릉제를 인정하느냐에 따라 결론이 갈린다.
태왕릉과 장군총 가운데 어느 쪽이 광개토왕의 무덤인지는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나는 이렇게 결론이 안 난 유적에서는 한쪽 설명을 고르지 않고 양쪽 근거를 따로 확인한다. 현장 안내문이 한쪽만 말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안내문은 누구의 관점일까?
지안에 가기 전에 준비할 것이 하나 더 있다. 현지 설명이 어떤 관점으로 쓰였는지 알고 가는 일이다.
유적지 관리소 공식 웹사이트는 고구려의 뿌리인 북부여를 “양한 시기 최강성의 동북 소수민족 정권”이라 적었다. 능비는 “중화민족 비각 예술의 진품”이라 규정했다. 이런 서술은 동북공정에서 나왔다. 중국사회과학원이 동북 3성과 2002년부터 2007년까지 벌인 사업으로, 2003년에는 “고구려는 중국의 고대 지방민족정권”이라는 데 합의했다.
유네스코 등재도 이 사업이 한창이던 2004년의 일이다. 등재 기준 문안에는 “고구려는 자기 문자를 발전시키지 못했다” 같은 표현이 들어갔는데, 중국이 낸 신청서를 바탕으로 쓴 문안이다. 위 인용은 모두 관리소 웹사이트 문안이라 현장 안내판도 같은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현장에 가면 안내판을 한 번 읽어 보길 권한다.

태왕릉은 많이 허물어졌고 능비는 유리 안에 있다. 규정상 무덤 앞에서 제사나 참배도 할 수 없다. 그래도 무덤 2기와 비 하나를 보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백두산 단체 일정으로 간다면 지안 경유가 포함되는지부터 확인하자. 2026년 8월 기준, 관광 목적의 30일 이내 무비자 입국은 2026년 12월 31일까지 가능하다.
이 기사에 나온 곳
- 구성
- 지안박물관, 환도산성, 장수왕릉(장군총), 호태왕비(광개토대왕릉비)
- 운영
- 하절기 08:00~17:00, 동절기 08:30~16:20
- 요금
- 공식 미공표(예매 플랫폼 기준 40위안부터)
- 문의
- 0435-6262796
- 참고
- 탁본, 집회·제사·현수막·전단·강연, 촬영금지 구역 촬영 금지
- 운영
- 08:20~16:40
- 휴무
- 매주 월요일
2026년 기준 정보입니다. 운영시간과 요금은 바뀔 수 있으니 가기 전에 한 번 더 확인해 주세요.
전국을 다니며 여행 기사를 씁니다. 가 본 곳 가운데 다시 가고 싶은 곳만 TBAG에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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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 여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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