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0년 은행나무에서 숲속 책방과 절벽 카페로
수령 약 1,317년으로 추정된 반계리 노거수를 본 뒤, 산중 북스테이 서점과 동네 독립서점, 빙벽장 절벽 앞 로스터리, 산 능선이 트인 숲 정원 카페까지 원주 5곳을 잇는다.
문막읍 반계리 은행나무는 10월 말에 물들기 시작한다. 기온이 내려가면 잎 속 엽록소가 먼저 분해되고, 그동안 가려져 있던 노란 색소가 겉으로 드러나는 원리다. 절정은 대개 11월 초순에서 중순 사이에 오고, 기온과 바람에 따라 날짜가 앞뒤로 며칠씩 움직인다. 잎은 가지 전체가 거의 한꺼번에 노랗게 바뀌고, 바람에 떨어지면 나무 아래 광장 바닥을 같은 색으로 덮는다.
원주 시가지는 동쪽으로 치악산을 등지고, 서쪽 문막 들녘으로는 섬강이 흐른다. 반계리는 그 서쪽 들녘의 마을이고, 책방 2곳과 카페 2곳은 시가지 남쪽 흥업면·판부면과 북쪽 지정면·호저면에 1곳씩 흩어져 있다. 수령 1,300년이 넘은 은행나무 아래를 거닌 뒤, 숲속이나 골목의 책방에서 책을 펼치고 창가에 앉아 가을볕을 마주하는 일정이다. 단풍 사진 한 장으로 끝나는 가을 나들이 대신, 나무와 책과 풍경 앞에서 천천히 머무는 시간에 초점을 맞췄다.
아침부터 해 질 녘까지 빛이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동선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노거수는 햇살이 낮게 드는 이른 시간에 찾아보고, 한낮은 조용한 책방에서 보내며, 해가 기울 무렵에는 시야가 트인 전망 카페에 앉는 식이다. 숲속 북스테이 서점과 동네 독립서점, 빙벽장 절벽 앞 로스터리와 산 능선이 펼쳐지는 정원 카페가 차례로 다른 풍경을 내어준다. 노란 은행잎 아래에서 시작해 산 능선 너머로 해가 기우는 창가에서 마무리되는 원주의 가을 하루다.
수령 약 1,317년으로 추정된 천연기념물, 반계리 은행나무
반계리 은행나무는 1964년 1월 31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지정 때 받은 번호는 제167호였는데, 2021년 문화재청이 지정 번호 표기를 없애면서 지금은 옛 번호로만 남았다. 기록된 높이는 약 32m이고, 최근 정밀 계측에서는 34.5m로 잰 자료도 나왔다. 가슴높이에서 잰 줄기 둘레는 16m를 넘는다. 어른 10명이 양팔을 벌려 손을 이어야 겨우 한 바퀴를 두르는 굵기다.
가지는 동서로 37.5m, 남북으로 31m를 뻗었다. 이 폭을 타원으로 어림하면 900㎡를 조금 넘는 넓이로, 농구 코트 2면을 덮고도 남는다. 나무의 나이는 오랫동안 800~1,000년으로 알려졌으나, 2024년 국립산림과학원 분석에서 약 1,317년이라는 추정치가 나왔다. 그러니까 통일신라 무렵에 싹을 틔운 셈이다. 다만 이 숫자는 확정된 나이가 아니라 추정치다.

800~1,000년으로 알려졌던 나이는 2024년 분석에서 약 1,317년으로 다시 매겨졌다.
은행나무는 같은 과에 한 종만 살아남은 겉씨식물이고,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자란다. 화석 기록이 2억 년 넘게 이어지는 까닭에 ‘살아 있는 화석’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수명이 길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노거수 가운데에도 은행나무가 여럿인데, 반계리 나무는 높이와 가지 폭이 모두 30m를 웃돈다. 계측 장비가 그 숫자를 고쳐 쓰기 훨씬 전부터,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에 저마다의 내력을 붙여 불렀다.
성주 이씨와 흰 뱀 전설이 남은 단풍 광장, 반계리 은행나무
마을에 전하는 이야기는 셋이다. 첫째는 성주 이씨 선조가 이 은행나무를 심었다는 내용으로, 노거수를 한 집안의 내력과 잇는다. 둘째는 길을 지나던 스님이 물을 얻어 마신 뒤 땅에 꽂아 둔 지팡이가 자라 지금의 거목이 되었다는 전설이다. 셋째 이야기에서는 나무 속에 흰 뱀이 산다. 그 뱀 때문에 누구도 가지 하나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다고.
세 이야기는 국가유산포털과 원주시역사박물관 안내에도 나란히 실려, 마을의 기억이 공식 기록으로 남았다. 원주시는 나무 둘레를 정비해 반계리 은행나무 광장과 보행 데크를 놓았다. 데크를 따라 한 바퀴 돌면 굵은 줄기가 사방으로 뻗어 올라간 모양을 어느 각도에서나 올려다볼 수 있다. 단풍 절정이 아니어도 가지가 갈라지는 골격만큼은 철마다 그대로 남는다.

다만 볼거리는 나무 1그루와 그 아래 광장에 모여 있어, 둘러보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숲 그늘을 따라 오래 걷는 산책을 바란다면 반계리 한 곳으로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럴 때는 시가지 남쪽 흥업면 산중의 숲속 책방으로 걸음을 옮길 만하다. 노거수 1그루 대신 숲 전체를 창밖에 두고, 나무에서 나온 종이 묶음을 느긋하게 펼쳐 드는 자리다.
책방지기가 먼저 읽고 고른 숲속 서가와 별채, 터득골북샵
흥업면 해발 350m를 넘는 숲속에 터득골북샵이 있다. 서울에서 출판과 디자인 일을 하던 부부가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내려와 2016년에 문을 열었다. 책방 이름은 이 골짜기를 부르던 옛 지명 ‘터득골’에서 따왔단다. 대안저수지를 지나 비두리 방향 산길로 접어들면, 길이 끝나는 숲속에 책방 지붕이 나타나는 식이다. 서점과 북카페를 겸하고, 곁에 딸린 별채에서는 하룻밤을 묵을 수 있어 낮과 밤의 쓰임이 나뉜다.

안으로 들어설 때는 실내 슬리퍼로 갈아 신는다. 신발을 벗는 작은 절차 하나로 문턱 안쪽은 상점보다 거실에 가까워진다. 서가에는 자연·생태와 귀촌을 다룬 책이 인문서, 문학 에세이, 그림책과 나란히 꽂혔다. 책방지기가 직접 읽고 고른 책이 서가의 뼈대를 이루니, 같은 분야라도 고른 사람의 눈을 한 번 거친 책이 앞줄에 선다. 책을 만들던 사람이 숲으로 옮겨 와 꾸린 목록이다.


통창 쪽 테이블은 숲을 향해 놓여, 책장을 넘기다 고개를 들면 나무줄기가 창을 채운다. 차림은 핸드드립 커피와 수제 차, 천연발효 통밀빵과 브런치, 단팥죽으로 짜여, 책을 펴 둔 채 끼니까지 이곳에서 해결할 수 있다. 책방 옆 별채는 텔레비전을 두지 않은 북스테이 공간이다. 화면 대신 책과 창밖 숲이 방 안을 채운다.

반나절쯤 숲을 앞에 두고 책 한 권을 끝까지 읽으려는 사람에게 맞는 책방이다. 서가만 훑고 바로 나올 생각이라면 산길을 오르는 수고가 크다. 별채에 묵으면 해가 진 뒤에도 골짜기에 머무르니, 산길을 두 번 오가지 않아도 된다. 숲속 서가가 책방지기 부부의 생활을 닮았다면, 시가지 남쪽 판부면 골목 서점은 동네 독자가 모이는 자리를 닮았다.
손글씨 소개 메모로 독립출판물을 권하는 동네 서가, 스몰굿씽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집 《대성당》에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라는 단편이 실려 있다. 원제는 ‘A Small, Good Thing’. 1983년에 나온 이 책에서, 카버는 1981년 작품집에 실었던 단편 〈목욕〉을 고쳐 쓰고 늘려 이 작품을 완성했다. 판부면 매봉길 건물 1층의 독립서점 겸 북카페 스몰굿씽은 이 원제를 소리 나는 대로 옮겨 간판에 걸었다.
서가의 중심은 대형 서점에서 찾기 어려운 독립출판물이다. 에세이와 시집, 사진집, 매거진 곁에 문학·인문 단행본과 중고 책을 함께 두어, 새 책과 헌책이 한 서가에서 섞인다. 책 곳곳에는 책방지기가 손으로 적은 짧은 소개 메모가 붙어 있다. 표지와 제목만으로는 내용을 가늠하기 어려운 소량 발행본을 고를 때, 먼저 읽은 사람이 건네는 첫 안내가 되는 메모다.


서가 안쪽 작은 테이블에서는 핸드드립 커피나 차를 주문해 고른 책을 펼친다. 독서 모임과 글쓰기 수업, 작가 북토크가 꾸준히 열려, 책을 파는 가게이면서 동네 사람이 모여 읽고 쓰는 자리 노릇도 한다. 처음 보는 작가를 한 명쯤 데려오고 싶은 날에 들르면 된다. 책방 2곳을 거쳤다면, 오후 커피는 시가지 북서쪽 지정면 계곡에서 마실 일만 남았다.
겨울이면 빙벽장이 되는 절벽을 마주한 로스터리, 스톤크릭
지정면 판대리의 스톤크릭은 판대천 계곡 건너 수직 암벽을 정면에 둔 대형 로스터리 카페다. 공식 누리집은 이 매장을 ‘스톤크릭 스테이션’이라는 이름으로 안내한다. 통창과 야외 테라스가 모두 절벽 쪽으로 열려, 가을에는 단풍 든 바위와 계곡이 좌석 앞을 채운다. 앞의 두 책방이 시선을 실내 서가에 붙들어 둔다면, 이곳은 시선을 창밖 바위에 걸어 두는 카페다.
맞은편 절벽은 계절에 따라 쓰임이 바뀌어, 겨울이면 강물을 끌어 올려 암벽에 얼린 인공 빙벽 등반장이 된다. 판대아이스파크다. 가을의 절벽은 얼음 없이 붉고 노랗게 물든 바위 그대로이고, 겨울에는 같은 자리에 얼음벽을 오르는 등반객이 매달린다. 같은 바위가 계절마다 다른 얼굴을 하니, 창가 자리에서 보는 풍경도 철 따라 바뀐다.

커피는 직접 볶은 스페셜티 원두로 내리는 핸드드립과 에스프레소 음료가 중심이다. 빵 진열대에는 원주 고구마빵과 소금빵, 케이크가 올라, 커피에 곁들일 거리를 고르기 어렵지 않다. 잔을 들고 테라스로 나가면 판대천 계곡 너머로 바위의 결과 단풍 빛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위를 코앞에 둔 테라스를 나서면, 남은 행선지는 시선이 먼 능선까지 빠지는 시가지 북쪽 호저면 산자락이다.
앞을 가리는 건물 없이 산 능선이 트인 숲 정원 카페, 사니다카페
호저면 주산리 해발 280m 산자락에 숲으로 둘러싸인 3만 평 부지가 있다. 약 9만 9,000㎡로, 국제 규격 축구장(105×68m) 14개를 합친 면적에 가까운 넓이다. 사니다카페는 이 땅에 들어선 베이커리 카페 겸 레스토랑으로, 빵과 커피와 식사를 한 부지 안에서 해결하는 구성이다. 스톤크릭이 바위를 코앞에 둔다면, 이곳에서는 시선이 멀리 이어진 산 능선까지 빠져나간다.
카페 앞쪽으로는 시야를 가로막는 구조물이 없다. 잔디 광장 둘레의 자작나무와 소나무 숲에 산책로를 내어, 빵을 고르기 전이나 커피를 비운 뒤에 숲을 한 바퀴 돌 수 있다. 흰 줄기의 자작나무와 사철 푸른 소나무가 섞인 숲이라 늦가을에도 빛깔이 한 가지로 가라앉지 않는다. 반계리 광장에서 채우지 못한 숲 그늘 아래 산책을, 하루의 끝에 이 산자락에서 마저 채우는 셈이다.

빵은 천연발효 반죽으로 매일 굽는다. 진열대에는 사니다샌드를 비롯한 빵이 놓이고, 음료로는 진한 커피에 크림을 얹은 아인슈페너와 다래스무디를 낸다. 화덕피자와 파스타를 내는 곳은 카페와 나뉜 별도 공간이다. 빵과 커피로 시작한 자리가 식사로 이어지는 사이, 산자락의 하늘빛이 저녁 쪽으로 기운다. 노란 은행잎으로 시작한 색이 능선 위 저녁빛으로 이어지는 산자락이다.
이 기사에 나온 곳
- 주소
-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문막읍 반저리2길 42(반계리 1495-1 일원)
- 운영
- 상시 개방
- 요금
- 무료
- 주차
- 무료
- 문의
- 033-737-2833(원주시 문화유산과)
- 주소
-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흥업면 대안로 511-42
- 운영
- 수~일요일 11:00~19:00
- 휴무
- 월·화요일
- 예약
- 북스테이는 전화 사전 예약(객실·요금은 문의)
- 문의
- 033-762-7140
- 주소
-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판부면 매봉길 52-1 1층
- 운영
- 수~월요일 12:00~21:00(행사일 변동, 인스타그램 공지)
- 휴무
- 화요일
- 문의
- 070-8881-7601
- 주소
-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지정면 지정로 1101
- 운영
- 매일 10:30~20:00(라스트오더 19:00)
- 휴무
- 연중무휴
- 요금
- 아메리카노 5900원, 카페라떼 6500원
- 주차
- 전용 주차장 무료
- 문의
- 0507-1359-7423
- 주소
-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호저면 칠봉로 109-127
- 운영
- 10:00~20:00(카페 기준)
- 휴무
- 연중무휴
- 요금
- 아메리카노 5500원, 아인슈페너 7500원
- 주차
- 무료
- 문의
- 0507-1498-4422
2026년 10월 기준 정보입니다. 운영시간과 요금은 바뀔 수 있으니 가기 전에 한 번 더 확인해 주세요.
전국을 다니며 여행 기사를 씁니다. 가 본 곳 가운데 다시 가고 싶은 곳만 TBAG에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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