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기사VOL. 022026⁠년 11⁠월호함께 읽을 기사 4/5
하얀 사과꽃이 핀 해플스팜사이더리 과수원과 잔디 마당
TRAVEL 경남 거창

사과 발효주 맛보고 협곡 다리 걷는 하루, 거창 4⁠곳

사과를 길러 사이더를 담그는 농장 양조장과 수승대 계곡, 교각 없는 Y⁠자 출렁다리, 1954⁠년 지은 옛 의원을 잇는 거창 4⁠곳이다.

노을에디터 노을
지역
경남 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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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분

거창은 백두대간 줄기의 해발 1000m⁠급 봉우리들이 사방을 두른 고장이다. 경상남도 북서쪽 끝에서 전북특별자치도, 경상북도와 맞닿은 군으로, 산자락 곳곳에 과수원이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서 거둔 사과는 거창을 대표하는 특산물로 꼽힌다. 그런데 이 열매를 과일 상자에 담는 대신 양조장으로 보내 술로 익히는 농장이 읍내 가까이에서 손님을 받는다.

과수원에서 시작된 발걸음은 거창의 계곡과 협곡, 시가지의 옛 건물로 차례차례 이어진다. 사과를 직접 길러 술을 담그는 농장 양조장은 이 고장의 과수원 풍경을 가까이서 보여 준다. 수승대 계곡에는 조선 선비들이 시를 새긴 바위가 물 한가운데 앉았고, 우두산 협곡에는 교각 없이 절벽을 잇는 Y⁠자형 출렁다리가 걸렸다. 장터 골목에는 1954⁠년에 문을 연 의원 건물이 남았다. 양조장과 박물관은 거창읍에, 수승대와 휴양 단지는 위천면과 가조면에 자리해 하루 동선은 중심가를 가운데 두고 바깥 면으로 뻗어 나간다.

직접 기른 사과로 발효까지 맡는 농장 양조장, 해플스팜사이더리

한국에서 사이더라고 하면 대개 투명한 탄산음료를 떠올린다. 하지만 이 말은 본래 사과즙을 발효해 담근 술을 가리킨다. 국내에서는 아직 낯선 술이지만, 근래 들어 사이더를 직접 만드는 소규모 양조장이 전국 곳곳에서 하나둘 문을 열었다. 거창읍 갈지2⁠길의 해플스팜사이더리도 그중 한 곳으로, 이름에 붙은 팜(Farm)⁠이 말해 주듯 양조장보다 농장이 먼저인 곳이다.

해플스팜사이더리는 사과나무를 직접 재배하고, 열매를 발효해 술로 담그는 주조 시설까지 갖췄다. 과수원과 양조장을 함께 꾸리는 이런 형태를 팜사이더리라 부른다. 농장은 사과밭과 양조 시설 일부를 손님에게 열어 두었고, 덕분에 술을 좋아하는 여행자가 일부러 찾아오는 곳이 됐다. 사과 산지 한가운데에서 한 농장이 재배와 양조를 함께 맡는다는 점이 이 집을 거창답게 만드는 대목이다.

잔디 마당 너머로 자리한 해플스팜사이더리 건물 외관
잔디 마당 너머로 자리한 해플스팜사이더리 건물 외관

과수원은 계절마다 얼굴을 바꾼다. 봄이면 가지마다 하얀 사과꽃이 피어나 밭 전체가 환해지고, 가을 수확 철에는 붉게 익은 열매가 나무마다 묵직하게 매달린다. 꽃이 피거나 열매가 익는 철에 찾으면 잔디 마당 너머 사과밭을 산책한 뒤 그 수확물로 담근 사이더를 맛볼 수 있다.

봄철 가지마다 하얀 꽃이 핀 해플스팜사이더리 사과나무
봄철 가지마다 하얀 꽃이 핀 해플스팜사이더리 사과나무

유리창 너머로 양조장을 보여 주는 농장 펍, 해플스팜사이더리

사이더하우스는 술집이라기보다 끼니까지 해결하는 레스토랑 겸 펍에 가깝다. 실내가 넓은 편이고, 큰 창 너머로 과수원과 거창의 산자락이 막힘없이 트인다. 실내 곳곳에도 눈여겨볼 만한 장식이 있어, 앉기 전에 한 바퀴 둘러봐도 좋다. 양조장은 손님이 창 너머로 들여다볼 수 있게 설계했다. 술을 만드는 자리와 마시는 자리를 벽 대신 창으로 나눈 구조다.

박공 통창 너머로 과수원과 산자락이 트이는 사이더하우스 실내
박공 통창 너머로 과수원과 산자락이 트이는 사이더하우스 실내
나무 선반에 나란히 진열한 해플스팜사이더리 병 사이더
나무 선반에 나란히 진열한 해플스팜사이더리 병 사이더

메뉴판의 중심은 사이더지만, 과일을 듬뿍 넣은 음료와 그 과일로 맛을 낸 요리도 함께 낸다. 함박스테이크와 고르곤졸라피자가 식사 메뉴로, 커스터드 사과파이가 디저트로 오른다. 식사 메뉴에도 하나같이 사과가 들어가 한 끼를 통째로 과수원 수확물로 채울 수 있다. 매장 한쪽에서는 농장 수확물로 만든 가공품도 함께 팔아 선물을 고르기에도 좋다. 술을 마시지 않는 일행은 음료와 파이 쪽에서 고르면 된다.

함박스테이크와 커스터드 사과파이, 음료를 함께 차린 식탁
함박스테이크와 커스터드 사과파이, 음료를 함께 차린 식탁

양조장 안쪽을 자세히 보고 싶다면 사이더리 투어를 눈여겨볼 만하다. 창 너머로만 보던 양조장 안을 직접 둘러보며 거창 사과가 술로 익어 가는 자리를 가까이에서 살피는 프로그램이다. 코스는 챌린지와 어드밴스 두 가지로 나뉜다. 차를 몰고 왔다면 운전자는 사이더를 마실 수 없다. 운전을 맡은 사람은 사과 음료와 파이로 자리를 채우고, 시음은 동승자 몫으로 남겨 두자.

퇴계가 이름을 고치고 선비들이 글씨를 새긴 계곡, 수승대

덕유산에서 흘러내린 물은 위천면 황산리에 이르러 너른 화강암 암반을 만나 굽이친다. 삼국시대에 이 일대는 백제와 신라가 맞닿던 경계였고, 백제가 신라로 떠나는 사신을 이 물가에서 배웅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사신이 돌아오지 못할까 걱정하며 보냈다 해서, 옛 이름은 근심 수(愁)⁠에 보낼 송(送)⁠을 쓴 수송대(愁送臺)⁠였다. 1543⁠년 퇴계 이황이 이 내력을 전해 듣고 수승대(搜勝臺)⁠로 고쳐 부르자는 시를 보냈단다. 이별을 근심하던 물가가 속세의 시름을 잊을 만큼 경치가 빼어난 자리로 이름을 바꾼 셈이다.

물길 한가운데에는 거북이 등을 내민 모양의 바위가 솟았다. 사람들은 이를 거북바위, 혹은 구연대라 부른다. 그 등판에는 퇴계가 보낸 개명시와 갈천 임훈이 그에 답한 화답시, 이 계곡에 은거하던 요수 신권의 시가 나란히 새겨졌다. 그 뒤로 이곳을 찾은 선비들도 저마다 시구와 이름을 보태 돌 표면이 글자로 빼곡하다. 바위에 시문과 이름을 남긴 사람만 250⁠여 명에 이른다.

위천 계곡 물길 한가운데 솟은 거북바위와 바위 위 소나무
위천 계곡 물길 한가운데 솟은 거북바위와 바위 위 소나무
거북바위 맞은편 언덕 솔숲에 자리한 요수정 정자
거북바위 맞은편 언덕 솔숲에 자리한 요수정 정자

거북바위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는 요수 신권이 제자를 가르치던 정자 요수정이 섰다. 물 건너편에는 신권을 모신 구연서원이 자리하고, 서원 문루인 관수루에 오르면 위천 계곡과 솔숲이 한 화면에 들어온다. 물줄기 양쪽으로는 1km 남짓한 산책로가 이어지고, 철제 다리나 징검다리를 밟아 건너편으로 넘어갈 수 있다. 여울 위로 징검다리가 놓여, 물소리를 발아래 두고 계곡을 가로지를 수 있다.

계곡을 따라 위쪽으로 걸으면 무병장수 둘레길이 시작되고, 그 길 위로 수승대 출렁다리가 물을 가로지른다. 총길이 240m⁠의 보행 전용 현수교로, 중간에 주탑을 세우지 않고 양쪽 끝에서만 붙든 곡선형 구조다. 물 위로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상판은 계곡 일대를 대표하는 사진 명소로 꼽힌다. 한꺼번에 여럿이 오르면 상판이 크게 흔들리니, 흔들림이 불편하다면 둘레길만 걸어도 충분하다. 위천면의 곡선 현수교와 달리, 가조면 우두산 협곡에는 Y⁠자로 뻗은 다리가 걸려 있다.

위천 계곡 위를 가로지르는 수승대 출렁다리 보행 상판
위천 계곡 위를 가로지르는 수승대 출렁다리 보행 상판

봉우리 3⁠개 사이 협곡을 교각 없이 이은 Y⁠자 출렁다리, 우두산 산림휴양단지

가조면 우두산 자락에는 숙박 시설과 산책로를 들인 산림 휴양 단지가 있다. 거창을 대표하는 웰니스 관광지로 꼽히는 곳이다. 우두산은 해발 1046m⁠로, 소 우(牛)⁠에 머리 두(頭)⁠를 쓰는 이름이다. 단지 이름의 ‘⁠항노화⁠’⁠는 노화를 늦춘다는 말로, 산림휴양관과 숲속의 집, 산림치유센터, 자생식물원이 산자락 곳곳에 나뉘어 들어섰다. 그 사이를 등산로와 무장애 산책로가 촘촘히 잇는다.

단지 입구에서 완만한 등산로를 15⁠분쯤 오르면, 봉우리 3⁠개 사이 협곡 위에서 세 방향의 다리가 한가운데로 모이는 구조물이 나타난다. Y⁠자형 출렁다리다. 45m, 40m, 24m 3⁠구간이 가운데에서 맞물려 총길이 109m⁠를 이루고, 계곡 바닥에서 상판까지 높이는 60m⁠다. 협곡 아래에는 교각을 세우지 않고, 봉우리 쪽 3⁠개 지점만으로 다리를 붙들었다.

우두산 협곡 사이 세 봉우리를 잇는 Y자형 출렁다리 전경
우두산 협곡 사이 세 봉우리를 잇는 Y⁠자형 출렁다리 전경
소나무 숲 사이로 이어지는 우두산 무장애 데크 산책로
소나무 숲 사이로 이어지는 우두산 무장애 데크 산책로

교차점에서는 협곡 아래 물길이 발아래로 내려다보이고, 골짜기를 따라 시선을 멀리 두면 거창의 산줄기가 겹겹이 이어진다. 산에 소나무가 많아 한겨울에도 숲 전체가 푸른빛을 잃지 않는다. 찾는 사람은 숲이 짙은 봄부터 가을 사이에 많다. 출렁다리는 걸으면 흔들리는 구조라, 높은 곳이 무섭다면 다리는 건너뛰고 산책로만 걸어도 된다.

단지 안에는 따뜻한 차를 파는 카페도 있어, 산책을 마치고 내려와 언 손을 녹이며 쉬어 가기 좋다. 출렁다리까지 오르는 길이 부담스럽다면 산자락을 구석구석 잇는 무장애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숲 공기를 마시며 걸어도 괜찮다. 다리만 보고 내려오기보다 숲길과 카페까지 둘러볼 생각이라면 반나절은 비워 두자. 단지 안 숲속의 집에 머문다면 출렁다리와 숲길을 이틀에 나눠 걸을 수도 있다.

1954⁠년 지은 의원의 진료실과 살림집을 남긴 공간, 거창근대의료박물관

거창은 삼국시대에 신라와 백제, 가야가 서로 맞닿던 접경이었고, 그 뒤로는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거점 고을로 자리를 굳혔다. 두 도를 오가는 길목에 놓인 덕에 일찍부터 큰 장시가 서 온 고을이다. 읍내에는 지금도 규모가 큰 장이 서서 장날이면 활기가 돌고, 장터 둘레로는 근현대 건물과 유적이 곳곳에 남았다. 거창근대의료박물관도 그중 한 곳으로, 장터 가까운 시장1⁠길에 선 옛 개인 의원 건물을 박물관으로 꾸몄다.

옛 자생의원은 1954⁠년, 그러니까 6⁠·25⁠전쟁이 정전으로 멈춘 이듬해에 거창에 들어선 근대식 의료 시설이다. 의원을 연 성수현 원장은 서울대 의과대학 1⁠회 졸업생으로, 전쟁에 군의관으로 참전했다가 다쳐 제대한 뒤 이 지역에 병원을 차렸단다. 그 무렵에는 흔치 않던 근대 의학을 다루는 병원이라, 거창은 물론 이웃 고을에서도 환자가 적잖이 찾아왔다. 의원은 반세기 가까이 지역 사람들의 몸을 돌보다 문을 닫았다.

1954⁠년 지은 의원 건물과 원장 살림집, 2013⁠년 국가등록문화유산 등록.

옛 의원은 2013⁠년 국가등록문화유산 ‘⁠거창 구 자생의원⁠’⁠으로 등록됐다. 진료를 마친 건물을 거창군이 사들여 고쳤고, 지금은 근대의료박물관으로 쓴다. 진료 공간 곁에는 원장 가족이 지내던 살림집도 남아, 일터와 집을 한 울타리 안에 둔 옛 개업의의 생활을 짐작하게 한다. 병원 건물과 살림채가 나란히 놓인 배치를 따라 마당 둘레를 천천히 걸어 보면, 반세기 전 지방 병원의 공간 구성이 한눈에 들어온다.

거창근대의료박물관으로 쓰이는 옛 자생의원 건물과 마당
거창근대의료박물관으로 쓰이는 옛 자생의원 건물과 마당
옛 자생의원 복도 벽면에 걸린 근대 의료 역사 전시 패널
옛 자생의원 복도 벽면에 걸린 근대 의료 역사 전시 패널

실내에서는 진료실과 수술실, 엑스레이 장비를 갖췄던 방을 둘러볼 수 있다. 지방 소도시의 개인 의원이 외과 수술실과 방사선실까지 한 건물에 갖췄던 셈이다. 한쪽 진열장에는 원장이 공부하던 의학 서적과 그 시절 환자에게 쓰던 의약품을 모아 두었다. 근대식 건물 구조 덕분에 사진 명소로도 알려졌고, 읍내 장터와 가까워 장 구경 길에 묶어 들르기 좋다.

이 기사에 나온 곳

해플스팜사이더리PLACE
주소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갈지2⁠길 192-8
운영
10:00~21:00
휴무
매주 화요일
문의
055-944-5111
수승대PLACE
주소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은하리길 2 (황산리 890 일원)
운영
상시 개방 / 수승대 출렁다리 3~10⁠월 09:00~17:50, 11~2⁠월 09:30~16:50
휴무
수승대 출렁다리 매주 수요일(공휴일 제외)
요금
무료(주차 유료)
문의
055-940-8530
거창항노화힐링랜드 (Y⁠자형 출렁다리)PLACE
주소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의상봉길 834
운영
하절기 관람 17:50⁠까지(매표 17:00 마감), 동절기 관람 16:50⁠까지(매표 16:00 마감)
휴무
매주 화요일(산림휴양관은 2026⁠년 11⁠월 9⁠일~12⁠월 31⁠일 리모델링 휴관)
요금
입장료 3000⁠원(만 7⁠세 이상 만 65⁠세 미만)
주차
유료
문의
055-940-7930
거창근대의료박물관 (옛 자생의원)PLACE
주소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시장1⁠길 32
운영
10:00~17:00(방문 전 운영 여부 확인 권장)
휴무
월요일
요금
무료

2026⁠년 10⁠월 기준 정보입니다. 운영시간과 요금은 바뀔 수 있으니 가기 전에 한 번 더 확인해 주세요.

노을
에디터 노을

전국을 다니며 여행 기사를 씁니다. 가 본 곳 가운데 다시 가고 싶은 곳만 TBAG⁠에 적습니다.

Magazine / 2026⁠년 11⁠월호에서 이어 읽기

다음 꼭지 · 함께 읽을 기사 5/5 · 7⁠분인왕산 계곡과 미술관을 걷고 한옥에 묵는 서촌
2026⁠년 11⁠월호 차례 기사 8⁠편 · 모두 읽으면 약 56⁠분
  1. 특집 1옮겨 세운 고택부터 평지 가람까지, 완주 소양 8⁠곳6⁠분
  2. 특집 2의병장 가문의 1939⁠년 한옥과 담장 너머 향교7⁠분
  3. 특집 3소설 속 여관에서 차밭 고개까지, 보성 늦가을 기행8⁠분
  4. 함께 읽기 11,300⁠년 은행나무에서 숲속 책방과 절벽 카페로7⁠분
  5. 함께 읽기 2감자빵의 오후와 옛 여관의 하룻밤, 춘천 3⁠곳7⁠분
  6. 함께 읽기 3사과 증류주 익는 양조장부터 고찰까지, 예산 5⁠곳7⁠분
  7. 함께 읽기 4사과 발효주 맛보고 협곡 다리 걷는 하루, 거창 4⁠곳7⁠분
  8. 함께 읽기 5인왕산 계곡과 미술관을 걷고 한옥에 묵는 서촌7⁠분
2026⁠년 11⁠월호 펼쳐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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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여기예요

진하게 칠한 점이 이 기사에 나온 곳입니다. 다른 점을 누르면 그 지역 기사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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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데이터: svg-maps (CC BY 4.0)
경남 거창기사 1⁠편
  1. 사과 발효주 맛보고 협곡 다리 걷는 하루, 거창 4⁠곳TRAVEL · 지금 읽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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