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나무와 단풍이 겹치는 길, 평창 가을 숲길 5
사철 푸른 월정사 전나무숲길부터 오대천을 끼고 상원사로 오르는 선재길, 비안길의 국립한국자생식물원, 평창강 절벽 데크와 대관령 초지까지. 단풍 철 평창에서 걸을 만한 5곳을 모았다.

해발 1563m 오대산 비로봉에서 내려온 단풍이 10월 중하순이면 골짜기에 닿는다. 사철 푸른 전나무 기둥 사이로 붉고 노란 잎이 겹쳐지는 시기다. 흔히 단풍 구경 하면 가파른 산행을 떠올리지만, 강원 평창에서는 운동화 차림으로도 가을 숲 한가운데로 들어갈 수 있다.
평창에서 가을에 걷기 좋은 숲길과 초지 5곳을 모았다. 오대산 자락 사찰 숲길과 계곡 옛길, 토종 야생화 정원부터 평창강 절벽 데크길, 해발 920m 대관령 초지까지다. 일정에 맞춰 반나절 산책부터 하루 트레킹까지 묶기 좋다.
상록 침엽수와 단풍이 교차하는 무장애 흙길, 월정사 전나무숲길
영동고속도로 진부나들목을 나와 오대천을 끼고 북쪽으로 달리면 오대산 골짜기로 들어선다. 탐방지원센터에서 1.2km쯤 더 들어가면 단풍나무 가지 너머로 월정사 일주문 현판이 보인다. 일주문부터 금강교까지 약 900m 구간에 평균 수령 80~100년, 최고령 생존목 380년 이상의 전나무 1700여 그루가 빽빽하다.

전나무는 다 자라면 키 40m, 줄기 지름 1.5m에 이르는 상록 침엽수다. 사철 잎이 푸르러 단풍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10월 숲길은 분위기가 다르다. 곧게 뻗은 전나무 기둥 사이로 단풍나무와 신갈나무, 돌배나무 같은 활엽수가 함께 자라기 때문이다. 짙은 초록 침엽수가 배경이 되어 주니 노랗고 붉은 단풍잎이 더 또렷해진다.
금강교를 건너 오대천 맞은편 데크 탐방로로 돌아 나오는 구간까지 합치면 한 바퀴 총길이는 1.9km다. 아치형 다리인 금강교를 빼면 전 구간이 평탄한 마사토 흙길과 목조 데크라 1시간 안팎이면 다 돈다. 휠체어나 유모차를 밀고도 턱에 걸리지 않고 숲을 한 바퀴 돌 수 있다. 가파른 산행이나 능선 조망을 기대하면 싱거울 수 있으나, 무릎 부담 없이 흙길을 밟기에는 알맞다.

이 숲은 고려 말 나옹선사가 절 주변에 나무를 심게 하면서 시작됐단다. 문헌 근거가 뚜렷하지 않아 전설에 가깝다는 이야기지만, 적어도 600년 넘는 세월을 이어온 숲인 셈이다. 신라 선덕여왕 12년(643) 자장율사가 세운 고찰 앞길이라 ‘천년의 숲길’로도 불린다. 산책로 중간에는 2006년 10월 강풍에 쓰러진 수령 약 600년의 최고령 고목(‘할아버지 전나무’) 밑동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단풍 철 주말 낮이면 매표소 앞 도로에 차가 길게 늘어선다. 아침 안개가 가시지 않은 조용한 흙길과 오대천 물소리를 온전히 듣고 싶다면 오전 9시 이전이나 평일 오전에 찾을 것.
사철 푸른 전나무 기둥 사이로 활엽수가 물드는 10월 중하순은 이 숲에 색이 가장 많아지는 때다.
천왕문 단풍 너머 팔각구층석탑과 찻집, 월정사 경내·청류다원
숲길이 끝나는 금강교 앞에서 짧은 오르막을 걸으면 사천왕을 모신 천왕문이 나온다. 금강교와 천왕문 둘레는 오래된 단풍나무가 모여 있어 가을 월정사에서 가장 붉은 구간이다. 처마 위로 단풍 가지가 낮게 드리워져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천왕문을 지나 마당으로 들어서면 중심 법당인 적광전과 국보 ‘평창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이 정면에 섰다. 고려 전기 화강암으로 세운 높이 15.2m의 다각 다층 석탑이다. 팔각형 기단 위에 9층 지붕돌을 올리고 꼭대기에 금동 상륜부를 얹었다. 탑 앞에는 오른쪽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은 국보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 복제본이 놓였고, 진품은 성보박물관에 있다.

적광전 용마루와 석탑 뒤로는 오대산 능선이 길게 뻗어 있다. 단풍이 절정에 이르면 탑 너머 산자락까지 노랗고 붉게 물든다. 월정사는 자장율사가 당나라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돌아와 세운 문수신앙의 중심 사찰이다. 6·25전쟁 때 칠불보전을 비롯한 목조 전각들이 모두 불탔으나, 화강암 석탑과 전나무 숲만큼은 살아남았다.

경내를 돌아본 뒤 다리를 쉬어 가기에는 금강교 옆 오대천 물가에 있는 전통찻집 ‘청류다원’이 알맞다. 야외 테라스나 통창 옆 테이블에 앉으면 오대천 물줄기와 숲 가장자리가 내려다보인다. 대추차와 쌍화차, 단호박식혜 같은 전통차를 내며, 바로 옆에는 커피와 빵을 파는 카페도 붙어 있다. 절 입구 매표소를 지나 경내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전나무숲길부터 적광전, 찻집까지 한 동선으로 이어진다.
옛 스님들이 오가던 오대천 9km 계곡 길, 오대산 선재길
월정사 일주문과 회사거리에서 계곡 상류인 상원사까지 이어지는 편도 9km 숲길이 ‘오대산 선재길’이다. 《화엄경》에서 선재동자가 깨달음을 구하며 걸었던 여정에서 이름을 따왔다. 1960년대 말 상원사까지 찻길이 뚫리기 전에는 스님과 신도, 화전민들이 짚신을 신고 오가던 옛길이다.

산책로는 내내 오대천 물줄기를 끼고 이어진다.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숲길과 목조 데크, 돌징검다리, 통나무와 솔가지를 엮은 섶다리, 출렁다리를 번갈아 건넌다. 길가 곳곳에는 옛 화전민 터와 숯가마터 흔적이 안내판과 함께 남아 있다.

국립공원공단이 매긴 선재길의 탐방 난이도는 가장 낮은 ‘하’ 등급이다. 계곡을 따라 완만하게 고도를 높이는 길이라 산책하듯 걸을 수 있다. 다만 상원사까지 편도 9km를 다 걷는 데만 3시간 30분 안팎이 걸린다. 왔던 길을 다시 걸어 내려오기보다 상원사까지 걸어 올라간 뒤 시내버스를 타고 월정사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편이 낫다.
고도가 높아지는 상원사 초입으로 갈수록 단풍 빛깔은 아래쪽보다 한층 짙다. 반나절 안에 가볍게 걷고 싶다면 회사거리에서 반야교나 오대산장 구간까지만 왕복해도 계곡 단풍을 충분히 본다. 상원사까지 완주한 뒤 버스로 내려올 계획이라면 출발 전에 종점 버스 시간표를 휴대전화로 찍어 두어야 한다. 배차 간격이 길어 막차를 놓치면 내려오기 어렵다.
외래종 없이 가꾼 오대산 자락 야생화 정원, 국립한국자생식물원
월정사 골짜기를 나와 진부 시내를 거쳐 대관령면 비안길로 15분쯤 차를 몰면 ‘국립한국자생식물원’이 나온다. 인파로 붐비는 오대산 주 탐방로에서 비켜난 막동리 계곡 안쪽이라, 단풍 철에도 조용히 걷기 좋다.

1999년 김창열 설립자가 사재를 털어 문을 연 국내 최초의 자생식물 전문 식물원이다. 외래 원예종으로 화단을 채우는 일반 수목원과 달리, 한반도 산과 들에서 자라는 토종 꽃과 나무만 심어 가꿨다. 설립자가 20여 년간 일군 부지와 식물을 기증하면서 2021년 산림청 산하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소속 국립식물원으로 정식 개원했다.
완만한 산비탈을 따라 주제원과 모둠정원, 습지원, 희귀·특산식물 보존원, 자작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10월이면 연보랏빛 벌개미취와 구절초, 노란 산국이 산책로 가장자리에 피고, 산비탈 자작나무 숲 위로 낙엽이 쌓인다.
멸종위기 야생식물을 보전하고 연구하는 기관인 만큼, 화려한 조형물이나 대형 온실을 기대하고 가면 수수하게 느껴질 수 있다. 반대로 인파를 피해 오대산 자락의 가을 들꽃과 자작나무 숲길을 천천히 돌아보고 싶다면 들르기 좋다.
평창강 절벽 데크부터 해발 920m 초지까지, 남산 다함께 나눔길·평창평화길과 대관령양떼목장
오대산 자락을 돌아본 뒤 남은 오후에는 귀가 방향에 맞춰 행선지를 고르면 된다. 남쪽 평창읍 강변 데크길이나 동쪽 대관령 고원 초지 가운데 1곳을 묶으면 하루 코스가 알맞게 끝난다.
평창 남부로 내려간다면 평창읍 ‘남산 다함께 나눔길’과 ‘평창평화길’이 있다. 평창버스터미널 앞 보도육교로 평창강을 건너면 바로 남산산림욕장 입구다. 산기슭부터 중턱까지 약 1km 구간에 지그재그로 놓인 ‘남산 다함께 나눔길’은 계단 턱을 없앤 목조 데크길이다.
소나무와 활엽수가 섞인 숲을 천천히 오르면 중턱에 누각 ‘송학정(송학루)’이 나온다. 옛 평창관아 문루가 철거될 때 지역 유생들이 1928년 이곳으로 옮겨 세운 누각이다. 지금 건물은 1999년 다시 지은 정자로, 마루에서 평창읍 시가지와 굽이치는 강줄기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남산 산림욕장을 내려와 강변을 따라 동쪽으로 걸으면 장암산 절벽 기슭에 매달린 수상 잔도 ‘평창평화길’로 이어진다. 약 1.7km 전 구간에 평탄한 목조 데크와 쉼터, 전망대를 두었다. 왼쪽으로는 단풍 든 장암산 절벽이 솟아 있고, 오른쪽으로는 평창강과 건너편 평창바위공원, 노람뜰이 보인다. 경사가 거의 없어 남산 구간과 묶어 2시간 안팎이면 산책을 마친다.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서울이나 강릉 쪽으로 돌아가는 일정이라면 진부면 옆 대관령면의 ‘대관령양떼목장’을 묶는 편이 낫다. 1975년 개통된 옛 영동고속도로 대관령휴게소 자리에 차를 대고 목장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20만 2541㎡ 규모의 구릉 초지 위로 1.3km 순환 산책로(왼쪽 500m, 오른쪽 800m)가 나 있다.
오른쪽 800m 코스는 해발 920m 정상부를 지나며 백두대간 능선이 트여 보인다. 양떼 야외 방목은 해마다 5월 중순부터 10월 말까지만 하며, 비가 오거나 안개가 짙은 날에는 양들을 축사로 들인다. 양들이 초지 전체를 뛰어다니기보다 움막 주변에 몰려 풀을 뜯으니, 넓은 초원 트레킹을 기대하고 가면 짧게 느껴질 수 있다.
오래 걷고 싶은 날에는 하늘목장이나 삼양라운드힐이 낫고, 짧은 고원 산책과 먹이 주기 체험이 목적이라면 이곳 순환로만 돌아도 충분하다. 산책로가 경사진 흙길이고 중간에 나무 계단이 있어 유모차는 들어갈 수 없다. 백두대간 보호지역 규제로 목장 안에 식당이 없고 외부 음식물 반입도 안 되니, 식사는 횡계 시내에서 미리 해결하고 올라갈 것.
10월 중하순 오대산과 대관령 일대는 해가 산능선 뒤로 일찍 넘어가 네 시만 지나도 골짜기에 그늘이 진다. 대관령양떼목장도 10월부터는 매표 마감 시각이 앞당겨지니 오후 3시 30분 전에는 도착해야 여유롭다. 아침 일찍 월정사 전나무숲길과 경내, 선재길 초입을 먼저 걷고, 낮에 국립한국자생식물원이나 대관령, 평창강 데크길로 이동하는 동선이 알맞다.
이 기사에 나온 곳
- 주소
- 강원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로 374-8
- 운영
- 일출 2시간 전~일몰(연중무휴)
- 요금
- 문화재 관람료 무료, 주차료 경차·전기차 3000원·중형 6000원·대형 9000원(현장 확인 권장)
- 소요 시간
- 전나무숲길 무장애 탐방로 왕복 1.9km 약 1시간
- 문의
- 월정사 033-339-6800, 오대산국립공원 탐방지원센터 033-332-6417
- 주소
- 강원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로 374-8(월정사)~오대산로 1211-50(상원사)
- 운영
- 하절기(5월 16일~10월) 04:00~15:00 입산, 동절기(11월~) 05:00~14:00 입산(산불방지기간 통제 구간 사전 확인)
- 소요 시간
- 월정사~상원사 편도 9km 약 3시간 30분
- 가는 길
- 상원사 종점에서 월정사·진부 방면 시내버스 운행(배차 간격이 길어 사전 시간표 확인 필수)
- 문의
- 오대산국립공원사무소 033-332-6417
- 주소
-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비안길 150-3
- 운영
- 3~10월 09:00~18:00(입장 마감 17:00), 11~2월 09:00~17:00(입장 마감 16:00)
- 휴무
-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추석 연휴
- 요금
- 어른 5000원, 청소년 4000원, 어린이 3000원(만 6세 이하·65세 이상 무료, 특별 무료 개방 기간 확인)
- 문의
- 033-339-9900
- 주소
- 강원 평창군 평창읍 중리 산5-1(평창남산산림욕장 일원)
- 운영
- 상시 개방
- 요금
- 무료
- 소요 시간
- 남산 다함께 나눔길 데크 약 1km·평창평화길 잔도 약 1.7km 합산 1시간 30분~2시간
- 가는 길
- 평창버스터미널에서 보도육교를 건너 남산산림욕장 입구로 진입
- 문의
- 평창군 관광안내 033-330-2771
- 주소
-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대관령마루길 483-32
- 운영
- 9월 09:00~18:00(매표 마감 17:00), 10월 09:00~17:30(매표 마감 16:30), 11~2월 09:00~17:00(매표 마감 16:00)
- 휴무
- 설날·추석 당일(우천·짙은 안개 시 야외 방목 중단)
- 요금
- 대인 9000원, 소인 7000원, 우대 6000원(36개월 미만 무료, 건초 교환권은 매표소에서 사전 확인·구매)
- 주차
- 옛 대관령휴게소 주차장 이용(목장 내 차량·유모차·음식물·반려동물 진입 불가)
- 문의
- 033-335-1966
2026년 10월 기준 정보입니다. 운영시간과 요금은 바뀔 수 있으니 가기 전에 한 번 더 확인해 주세요.
전국을 다니며 여행 기사를 씁니다. 가 본 곳 가운데 다시 가고 싶은 곳만 TBAG에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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