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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우 무렵 하동,첫물차 마시러 간다

곡우 무렵이면 한 해의 첫물차 우전이 나온다.한국 차가 처음 심긴 하동에서 야생 차밭과 다원, 금오산 케이블카까지 이었다.

에디터 노을2026.04
화개 골짜기 산비탈을 덮은 초록 차밭과 농가 몇 채
노을에디터 노을
지역
경남 하동
주제
FOOD
발행
읽는 시간
4분

해마다 4월 곡우 무렵이면 한 해의 첫물차, 우전이 나온다. 이맘때 차향이 가장 진한 곳이 경남 하동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흥덕왕 3년, 당나라에서 차 종자를 들여온 사신 김대렴이 왕명을 받아 처음 차를 심은 곳이 이 골짜기다. 그로부터 1200년 동안 차나무가 화개와 악양 산자락에 야생으로 자라고 있다. 하동 차밭과 다원, 그리고 차밭 너머의 풍경까지 정리했다.

차밭에 바위가 있다, 하동 차밭

보성이나 제주의 차밭은 대규모 농장이라 단정하게 정리돼 있다. 하동 차밭은 다르다. 가파른 산비탈에 계단식으로 차나무를 심었고, 바위틈에서는 야생 차나무가 솟아난다. 차밭 한가운데 바위가 솟아 있고, 뒤로는 대숲이, 위로는 운무가 걸린다. 인도 다르질링과 비교되는 이유다.

향미는 땅과 날씨가 만든다. 햇빛을 알맞게 가려 주는 안개, 자갈 섞인 사력질 토양, 큰 일교차가 화개동 야생차의 맛을 정한다. 하동 전통차농업은 2017년 유엔식량농업기구가 지정하는 세계중요농업유산에 올랐다. 화개와 악양 일대에 흩어진 다원만 어림잡아 150곳이 넘는다.

가파른 비탈을 빽빽하게 덮은 차나무와 언덕의 작은 흰 오두막
가파른 비탈을 빽빽하게 덮은 차나무와 언덕의 작은 흰 오두막

차밭 한가운데 바위가 솟아 있고, 뒤로는 대숲이, 위로는 운무가 걸린다.

우전을 골라 우린다, 티카페 하동

하동 차가 처음이라면 화개면의 하동야생차문화센터부터 가길 권한다. 박물관, 체험관, 치유관이 있고, 1층에 ‘티카페 하동’이 있다. 눈여겨볼 곳은 ‘차 셀프 코너’다. 하동의 이름난 다원들이 생산한 고급 우전을 직접 골라 우려 마실 수 있다.

방법은 이렇다. 다관과 모래시계를 앞에 두고 70~80도로 식힌 물을 부어 2분을 기다린다. 첫 우림에서는 아미노산이 내는 감칠맛이, 2번째 우림에서는 카테킨이 내는 은은한 떫은맛이 짙어진다. 2번째 잔이 가장 균형 잡혔다는 사람이 많다.

메뉴판에는 작설의 하동 사투리에서 온 ‘잭살탕’과 인절미 와플 같은 디저트가 있고, 모두 하동 식재료로 차린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다도 프로그램 ‘하동 티소믈리에’나 야외 ‘녹차 족욕’도 해 보자.

윤기가 도는 초록 찻잎
윤기가 도는 초록 찻잎

7대째 토종 차만, 도심다원

화개면 신촌도심길로 들어서면 도심다원이 나온다. 7대째 차 농사를 짓는 집이다. 밖에서 차나무를 들여온 적 없이 토종 자생 야생차만 고집한다. 350도 안팎의 가마솥에서 덖고, 숯불 가마솥에서 가향하는 전통 수제차를 만든다.

이 마을은 한국 최고령 차나무가 살던 곳이다. 높이 4.1m, 둘레 52cm였던 천년차나무는 2011년 동해(凍害)로 고사했다. 지금은 수령 100~500년으로 추정되는 후계목 15그루가 그 자리를 잇는다.

차 시배지에서 신촌차밭과 천년차나무 후계목, 도심다원을 거쳐 정금차밭에 이르는 천년차밭길은 약 2.7km다. 1시간에서 1시간 반쯤 여유 있게 걸으면 된다. 정금차밭 꼭대기의 단금정에 오르면 화개 골짜기가 한눈에 보인다.

마을과 계단식 차밭, 강이 산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화개 골짜기
마을과 계단식 차밭, 강이 산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화개 골짜기

걷고 나서는 도심다원의 ‘차 바구니 세트’를 받자. 야외 정자를 예약해 쓰는 방식이고, 녹차와 다기, 간식, 피크닉 매트를 바구니 하나에 담아 준다. 이 다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다.

골짜기가 내려다보이는 정자 탁자 위의 바구니와 청자 다관, 찻잔
골짜기가 내려다보이는 정자 탁자 위의 바구니와 청자 다관, 찻잔
난간 두른 테라스 탁자에 놓인 차 바구니와 찻잔, 그 아래 초록 들판
난간 두른 테라스 탁자에 놓인 차 바구니와 찻잔, 그 아래 초록 들판

관사 다다미방에서 홍차, 매암제다원

하동 차밭은 화개에만 있지 않다. 악양면 평사리 들판 너머에 매암차문화박물관, 곧 매암제다원이 있다. 1963년 고 강성호 옹이 옛 경상남도 임업시험장을 사들여 시작한 다원으로, 지금은 강동오 관장이 3대째 잇고 있다. 약 1만 8000㎡의 차밭 곁에 2000년 5월 문을 연 국내 첫 차문화 사립박물관이 있다.

박물관 건물은 1926년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산림국이 임업연습림 부지에 세운 임업시험장 관사다. 일본식 가옥의 마루와 복도, 창문, 다다미가 그대로 남아 있고, 다다미방 창으로 너른 차밭이 보인다.

그런데 여기 대표 차는 우전이 아니라 홍차다. 매암홍차, 산뜻홍차, 고소홍차로 맛을 나눴다. 주문하면 다관과 잔, 모래시계가 함께 나온다. 찻잎은 3번 우려 마시자.

금오산 정상 849m, 하동케이블카

차를 충분히 마셨다면 하동의 산과 강으로 가 보자. 2022년 문을 연 하동케이블카는 해발 849m 금오산 정상까지 올라간다. 정상에서는 한려해상 다도해와 지리산 자락이 함께 보인다.

섬이 흩어진 바다를 뒤로하고 숲 능선 위를 오르는 하동케이블카
섬이 흩어진 바다를 뒤로하고 숲 능선 위를 오르는 하동케이블카

섬진강 쪽에도 들를 곳이 있다. 하동송림공원은 조선 영조 21년(1745년) 도호부사 전천상이 섬진강 모래바람을 막으려고 만든 솔숲으로, 노송 약 900그루가 자라는 천연기념물이다.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인 최참판댁은 1998년 한옥 14동으로 지은 세트장이고, 평사리 들판을 내려다본다. 스타웨이하동은 섬진강 수면 위 150m 높이에 별 모양으로 세운 스카이워크다. 일부 구간은 바닥이 투명하다.

금오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들판과 바다의 섬들
금오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들판과 바다의 섬들

순서는 이렇게 잡으면 된다. 화개에서 차밭길을 걷고 도심다원 정자에서 쉰 뒤, 악양 매암제다원에서 홍차를 우리고, 금오산 케이블카로 마무리한다. 날짜는 첫물차 우전이 나오는 4월 곡우 무렵으로 잡자.

노을
에디터 노을

전국을 다니며 여행 기사를 씁니다. 가 본 곳 가운데 다시 가고 싶은 곳만 TBAG에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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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데이터: svg-maps (CC BY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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