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2계단 끝에서 본 백두산 천지
5월 말 북파에서는 눈보라와 안개 사이로 얼어붙은 천지를 잠깐 봤고, 다음 날 서파 1442계단을 올라 다시 천지를 봤다.장백폭포와 금강대협곡까지, 중국 쪽에서 오른 백두산 이야기다.

2023년, 오랜 기다림 끝에 백두산 가는 길이 다시 열렸다. 인천에서 비행기로 창춘에 내려 버스로 온종일 달렸고, 얼다오바이허(二道白河) 시내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천지는 보기 어렵기로 이름났다. 산 아래 날씨가 맑아도 천지 날씨는 딴판일 때가 많다. 중국 쪽에서 오르는 코스 가운데 북파와 서파를 이틀에 걸쳐 올랐다.
오전엔 닫히고 오후엔 열렸다, 북파
아침에 북파가 닫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얼다오바이허 시내는 맑았지만, 정상부에 악천후가 몰아친다고 했다. 오후에는 열릴 수도 있다는 말에 근처 공원을 산책하며 기다렸다.
점심으로 비빔밥을 먹던 중에 문이 열렸다는 소식이 왔다. 북파 셔틀버스 탑승장인 북파 방문자센터(长白山北景区游客中心)로 서둘러 갔다. 갑자기 열린 사실이 아직 퍼지지 않았는지 사람이 거의 없었다. 평소라면 1시간쯤 줄을 서야 한다는 게 가이드의 말이었다.

셔틀버스는 자리가 다 차야 출발하고, 50분 동안 쉬지 않고 달린다. 산에 가까워질수록 숲이 짙어지고, 창밖으로 백두산에서만 자란다는 소나무 미인송이 끝없이 늘어섰다. 그런데 천지는커녕 비슷한 능선도 보이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리면 승합차로 갈아타야 북파 정상부까지 간다. 예전에는 5인승 SUV 수십 대가 아슬아슬한 절벽 길을 내달렸고, 지금은 승합차로 바뀌었다. 승합차는 사람을 가득 태우고 빠르게 비탈을 오른다. 나는 안전벨트를 조이고 손잡이를 꽉 잡았다.

정상부에 내리자 안개가 자욱했고, 5월 말인데도 눈보라가 귓불을 때렸다. 천지까지는 걸어서 5분인데, 천지 쪽에서 칼바람이 불어오고 구름과 안개가 사방을 덮었다.
‘천지’라는 한자를 새긴 바위 앞에 섰다. 1983년 백두산을 관광지로 개발한 덩샤오핑이 쓴 글자라고 한다. 그 밖에는 눈보라와 얼음, 텅 빈 탐방로뿐이었다. 한숨을 쉬던 참에 등 뒤에서 탄성이 터졌다. 안개가 잠깐 걷히며 천지가 드러났다. 5월 말인데도 호수는 하얗게 얼어 있었다. 사진 몇 장을 찍자 천지는 다시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일행을 먼저 내려보내고 한참을 더 서 있었지만 천지는 다시 나오지 않았다.


1442계단 끝에서, 서파
다음 날은 북파보다 천지가 더 아름답게 보인다는 서파로 갔다. 가는 방식은 비슷하다. 방문자센터에서 버스를 타고 중산간까지 오른 뒤, 승합차로 등산로 입구까지 간다. 이날은 승합차 앞유리 너머로 천지 주변 능선이 또렷하게 보였다.

서파는 걸어서 오르는 구간이 있다. 처음에는 1000여 개 계단으로 등산로를 냈다가, 위험하다는 이유로 다시 만들면서 계단이 1442개가 됐다. 계단 수보다 높이가 문제다. 이 일대가 해발 2500m쯤이라 고산병 증세가 올 수 있어서 천천히 올랐다.

가이드는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좋으니 오르는 동안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도 자꾸 뒤를 돌아봤다. 능선을 타고 흐른 용암이 굳어 생긴 절벽이 이어지고, 높이에 비해 완만한 고원이 펼쳐졌다.

오르는 사이 천지 쪽에 다시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위에서 천지가 기다린다며 응원을 건넸다. 1442번째 계단을 밟자 천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1442번째 계단을 밟자 천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천지는 둘레가 14km에 이르는 호수다. 이렇게 높은 곳에 물이 이만큼 고였다는 게 잘 믿기지 않았다. 너무 넓어서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았고, 고개를 몇 번이나 돌려 가며 봤다. 3대가 덕을 쌓아야 온전한 천지를 본다지만 나는 이 정도로 충분했다.
북파엔 폭포, 서파엔 협곡
북파와 서파에는 천지 말고도 방문객에게 개방한 명소가 있다. 북파에서는 장백폭포를, 서파에서는 금강대협곡(锦江大峡谷)을 찾았다.
장백폭포는 천지의 물이 쏟아져 내리는 곳이다. 천지의 물은 ‘달문’으로 빠져나와 쑹화강의 시작이 된다. 달문을 지난 물줄기는 용암이 만든 협곡으로 68m 높이에서 떨어진다. 폭포 주변은 온천 지대이고, 여기서 출발한 물은 약 1960km를 흘러간다.

금강대협곡도 용암이 흐르며 생긴 지형이다. 화산 폭발 때 용암이 흘러 깊게 팬 땅에 흙이 쌓이고 바람에 깎이면서 지금 모습이 됐다. 침엽수림 사이 탐방로를 따라 들어가야 나오는 협곡이라, 사람들 눈에 띈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한다. 협곡을 오가는 숲길은 서파에서 원시림을 가장 가까이 걷는 탐방로다.


이 기사에 나온 곳
- 가는 길
- 북파 방문자센터(长白山北景区游客中心)에서 셔틀버스로 약 50분, 승합차로 갈아타 정상부까지
- 참고
- 정상부에서 천지까지 걸어서 5분, 장백폭포 개방
- 가는 길
- 방문자센터에서 버스로 중산간까지, 승합차로 등산로 입구까지
- 참고
- 등산로 계단 1442개, 금강대협곡 개방
2023년 기준 정보입니다. 운영시간과 요금은 바뀔 수 있으니 가기 전에 한 번 더 확인해 주세요.
전국을 다니며 여행 기사를 씁니다. 가 본 곳 가운데 다시 가고 싶은 곳만 TBAG에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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